아니야, 잘못 되었어!
채소 농사를 짓던 젊은이가 쌀을 살 돈을 마련하려고 장에 채소를 팔고 있던 중 뙤약볕 아래 노승이 미동도 않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젊은이는 왜 그런지 궁금하여 스님께 다가가 물어보았습니다. 한참을 대답도 없이 가만 있더니 조용한 말투로 "점심시간입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젊은이가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물어보자 노승은 장삼 안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곳엔 벼룩과 이 같은 작은 벌레 수백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승이 하는 말씀. (지금부터는 책의 내용을 그대로 베끼겠습니다.)
"내가 부산스레 움직이면 이놈들이 제대로 점심을 먹을 수가 없소. 그래서 이놈들이 먹는 동안은 이렇게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젊은이는 노승이 실성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노승의 얼굴과 눈을 보니 장난기나 해괴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비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노승은 매우 고요하고 맑은 눈빛에 평온한 모습이었다. 수염을 깎지 않아 단정치는 않았지만 노승은 온화한 자비심을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미물한테까지도 자비를 베푸시는 겁니까?"
노승은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이 미물들도 목숨을 아끼지 않겠소?"
노승의 자비심에 감명한 젊은이는 재빨리 공손히 합장하여 절하며 노승에게 제자가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노승은 이전처럼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되오이다."
"왜 아니 된다는 것입니까?"
"왜 승려가 되고 싶은 것이오?"
"저는 결혼에 뜻이 없습니다. 바른 길이 무엇인지 알고 진정한 '나'를 찾고 싶습니다. 스님께서 미물에게까지도 자비를 베푸시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바른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큰스님이심이 분명합니다. 스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출가자로 산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노승은 모자를 벗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물었다.
"지금 어디에 사시오?"
"부모님께서는 돌아가셨고, 현재 형과 옆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집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좋소. 그러면 같이 가오."
둘은 그 길로 산중으로 들어갔다. 깊은 산골짜기를 향해 거의 쉬지 않고 갔는데, 걸어가는 내내 노승은 침묵을 지켰다. 굽이치는 계곡과 바위 절벽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다 이따금 멈추어 조용히 휴식을 취할 뿐이었다. 그러기를 몇 시간, 마침내 진흙과 돌로 지어진 조그만 암자에 다다랐다.
전통 암자 구조의 특성상 공양간은 본채에서 떨어져 있다. 공양간에는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있고 아궁이 위에는 아주 크고 무거운 가마솥이 걸려 있는 게 보통인데, 이 암자의 공양간에 있는 가마솥과 아궁이는 둘 다 이지러져서 이를 고치려면 꽤나 애를 먹을 판이었다. 솥을 걸 때에는 솥 자리를 잡은 후, 솥 안에 물을 부어 균형이나 중심이 잘 잡혔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중심이 잘 잡히지 않으면 무슨 요리를 하더라도 골고루 익지 않고 맛도 없어 음식을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심을 잘 잡아 가마솥을 제대로 앉히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장터에서 출발한 이래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노승이 가마솥을 가리키며 입을 떼었다.
"이걸 고치게나."
그러고 나서 노승은 휑하니 사라졌다.
의기충천한 젊은이는 아궁이를 해체한 후 바닥을 평평하게 하고 경사를 맞추며 기초 작업을 했다. 아궁이를 다 고치자 젊은이는 노승을 공양간으로 모셔왔다.
"다 고쳤습니다."
노승은 솥의 가장자리를 꼼꼼히 확인해 보더니 물을 한 바가지 부었다.
"잘못되었어!"
이 한 마디와 함께 솥을 엎으며 노승이 말했다.
"다시 해!"
젊은이는 생각했다. '음..... 눈이 굉장히 날카로우시구나. 잘못된 점 몇 가지를 보신 거야.' 다시 수리를 시작한 젊은이는 이번에는 경사를 정확히 하고 가마솥의 균형을 맞추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 후 물을 한 바가지 떠서 가마솥 안에 붓고는 수평이 이루어졌는지를 직접 확인해 보았다. 젊은이는 이전보다 훨씬 흡족해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노승을 모셔왔다.
"스님, 이번에는 제대로 고쳤습니다."
"그래, 내가 한번 확인해 봄세."
노승은 솥의 가장자리를 유심히 살피더니 솥 가장자리로 물을 흘려 부었다. 그러더니 솥을 엎어 물을 버리며 말했다.
"아니야, 잘못되었어. 다시 하게."
'내가 실수를 한 게 분명해! 뭐가 잘못된 거지?' 젊은이는 무척 의아해 하며 혼자 되뇌었다. '어쩌면 솥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아궁이가 잘못되었을지도 몰라.'
조그만 실수라도 있을까 꼼꼼히 살피고, 솥을 아궁이 위에 걸고서 약간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다시 고쳤다. 그런 다음 부뚜막 전체를 확인하며 모든 게 제대로 깔끔하게 정돈되었는지를 살폈다. 젊은이는 물을 부어 솥이 수평을 이루었는지 확인해 확인을 거듭하고 나서야 피로로 욱신대는 등을 두드리며 노승에게 갔다.
"스님, 다 고쳤습니다. 재차 삼차 확인했습니다. 스님께서도 만족하실 겁니다."
가마솥을 찬찬히 살펴본 노승이 솥을 엎어 물을 버리며 말했다.
"아니야! 다시!"
젊은이는 무엇이 문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스님께서는 잘못된 점을 아시는데 왜 난 못 보는 거지? 가마솥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공양간에 문제가 있는 걸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젊은이는 천장부터 바닥까지 공양간 전체를 고치기 시작했다. 수리가 끝나고 그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생각했다. '자, 됐어. 이제는 스님께서 승낙하실 수밖에 없을 거야.' 그는 다시 노승을 부르러 갔다.
"스님, 공양간 전체를 개조했습니다. 완벽합니다. 가셔서 확인해 주십시오."
"오, 그래? 좋아! 좋아! 열심히 일했다니 매우 기쁘군. 가서 확인해 보지."
노승은 가마솥을 다가가 물을 한 바가지 부었다. 그런데 그는 솥이 수평이지 아닌지 확인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야!" 하고 외친 노승은 또 다시 솥을 엎었다.
똑같은 과정이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반복되었다. 젊은이는 매번 '이번에는 뭐가 잘못된 거지?' 하고 생각했고 노승은 매번 "아니야! 잘못되었어!"라고 말하며 솥을 엎었다.
젊은이는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인 거야?' 아홉 번째 고친 후 그는 혼잣말을 되뇌었다. '이 스님이 잘못된 거야. 스님이 뭐라고 하든 상관 안 해. 이번이 마지막이야.' 젊은이는 다시 고치기는커녕 있는 상태 그대로 아궁이 위에 가마솥만 걸쳐 놓고는 노승을 불렀다.
"스님, 다 했습니다!"
이를 본 노승은 "좋아! 좋아!"를 외치며 발우를 가지러 갔다. 그날 저녁, 노승과 젊은이는 맛있게 공양을 했다. 그러나 가마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책을 그대로 베낀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노승은 왜 젊은이가 아홉 번이나 수리하는 동안 계속 "아니야! 잘못되었어!"하고 부정했을까요? 정말 젊은이가 모르는 부분에서 흠을 발견했을까요?
이 이야기는 미국 뉴저지주 출신의 현각 스님이 스승 숭산 스님의 이야기를 모은 책 <부처를 쏴라>에 실려있습니다.
숭산 스님은 이 노승이 제자의 실력을 시험한 게 아니라 마음을 시험했다고 합니다. 선(禪)은 무엇에도 좌우되지 않으므로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출가하려고들 하는데 얼마나 자신을 믿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크게 깨우친 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모든 것을 나보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다른 사람에게 평가를 받으며 살아왔던 게 얼마나 어리석었나 생각을 했습니다. 나 스스로 완성하고 만족하기 보다는 남이 좋은 평가를 해주면 그것으로 완벽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자신의 노력과 신념을 믿기보다 남의 평가에 의해 자신을 규정해버리진 않은지요?
<부처를 쏴라> 현각 엮음, 양언서 옮김, 김영사, 1만 5000원(숭산 스님 법문 영상 시디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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