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생학교 숲 '위험한 커브' 관극 감상
연극인생학교 숲은 지난해 생긴 극단? 음... 극단은 극단인데 연극을 배우러 왔던 시민 학생이 자연스레 무대를 꾸며보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연극작업이라 극단이라기보다 연극학교라는 서용수 대표의 설명이다. 아, 학교니까 대표라기보다 교장이 더 어울리겠다.
창단한지 1년 3개월. 그런데 벌써 9회 정기공연이다. 짧은 기간 참 열심히도 만들었다. 공연보를 보니 올해 초 창원나비아트홀에서 올린 '굿닥터' 하나 보았군. 그때도 객석이 가득찼더랬다. 어제 본 '위험한 커브' 역시 계단에도 빼곡히 앉아야 할 정도로 관객이 가득 찼다.
관람료가 없다는 점을 서 대표가 강조했지만 무료라서 공연을 보는 관객은, 글쎄 요즘 시대에 무료가 큰 매력은 아닐 터. 숲이 매번 만석을 이루는 배경에는 독특한 태생의 구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숲은 전문연극인들로 구성된 극단이 아니라 학생, 청년, 일반인으로 구성된 동네배우들이 참여해 작업이 이루어지는 구조다.
공연이 진행될 때 배우들의 사소한 실수에, 또는 어색한 표정에, 또는 살짝 웃기는 몸짓에도 관객들은 확연한 반응을 보인다. 배우와 아는 사람들이기에 더욱 적극적 관극태도를 보이고 그게 다른 관객에게도 웃음을 유발하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출연 배우 3명 모두 아마추어다. 두 사람은 2번째 무대에 섰고 한 사람은 고3이다. 솔직히 고3 배우가 동생역을 맡은 배우보다 더 어리다는 얘길 들었을 때 '반전'이다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랐지만, 다들 초보들이면서도 긴장하는 기색 없이 무대 위에서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품은 고속도로 커브 지점에 사는 남매 이야기다. 희곡을 쓴 이가 탄그레드 도르스트, 독일작가다. 독일 작품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경향이 '부조리'인데 이 작품 역시 부조리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자면 죽다 살아난 고속도로 관리소 사무국장을 죽이게 되는 이유가 엉뚱하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동기인데, 남매가 헤어지게 되고 동생이 장송시를 더 쓸 수 없게 된 것이 이유라면 차라리 이해하겠다. 사무국장이 바람을 피운 게 이유라니. 이 장면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살인자가 단지 햇살이 눈부셨다는 이유로 전혀 원한관계가 없는 행인을 총으로 쏘는 장면과 결을 같이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부조리한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아니, 왜? 싶을 정도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발생하는 사건들.
사실 '위험한 커브'에서 유추할 수 있는 전사는 다소 황당하다. 바위가 튀어나온 커브 지점에서 24번의 사고가 발생했고 버스와 승용차에 탑승했던 사망자들은 행정적인 조치 없이 누나와 동생에 의해 매장되고 장사를 치렀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사무국장이 시를 쓴다는 그 동생에게 어떻게 먹고 사느냐, 주 수입원이 어떻게 되느냐고 질문했을 때 머뭇거리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나쁜 짓을 하고 살았구만'하는 의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말하자면 사망자의 주머니를 털어서 살았던 게지. 그런데 머뭇거린 끝에 이렇게 답한다. "누나가 공장일을 하고 벌어온 돈으로 살아요." 이 말은 첫 장면 누나와 동생의 대사에서 누나 혼자 돈을 번다는 것을 알게된 관객에게 설득력을 갖는다. 합리적 의심을 포기해야 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성적이고 추리를 할 줄 아는 관객이라면 당연히 이 오누이가 선량한 척 하지만 얼마나 악마성이 깃든 영혼의 소유자인지를 눈치챌 것이다.
연출을 맡은 김수희 예술감독은 "행복한 공존, 그것은 실제로 가능할까"하고 화두를 던졌다. 글쎄 이 각박하고 부조리한 세계에서 그런 세계를 꿈꾸는 것 이상 가능할까. 웃으면서 연극을 보고는 무거운 짐을 떠안은 기분이다.
다음에 숲의 공연을 보게 된다면 뒤풀이에라도 참석해 작품이 던져주는 화두에 대해 연출 배우들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봤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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