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목은 높은? 깊은? 넓은? 아니면 멀리내다보는 안목?
오랜 만에 꽤 괜찮은 책을 손에 쥐었다. 유홍준의 <안목>. 내가 베짱이류는 아니지만 일하는 것만큼 예술 바닥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 연극, 영화, 음악 연주, 미술전람회 등등 가리지 않고 즐기는데 기본 소양이 부족해서 인지 예술을 보는 안목이 좁디좁은지라 우연히 어느 잡지에 소개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면서 읽는 쪽마다 무릎을 치다 보니... 안티프라민이 무슨 소용이랴.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논한 환재 박규수의 안목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눈길을 끈다. 박규수는 추사체를 보고 이렇게 적었다.
"추사의 글씨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서법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오직 동기창체에 뜻을 두었고, 젊어서 연경(북경)을 다녀온 후에는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옹방강을 좇아 노닐면서 열심히 그의 글씨를 본받았다. 그래서 이 무렵 추사의 글씨느 ㄴ너무 기름지고 획이 두껍고 골기가 적었다는 흠이 있었다.(…) 그러나 소식, 구양순 등 역대 명필들을 열심히 공부하고 익히면서 대가들의 신수를 체득하게 되었고, 만년에 제주도 귀양살이로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부터는 마침내 남에게 구속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법을 이루었으니, 신이 오는 듯, 기가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하였다.(…) 그래서 내가 후생 소년들에게 함부로 추사체를 흉내 내지 말라고 한 것이다."
박규수는 추사체가 제주 귀양살이 후에 완성되었다고 본 것이다. 유홍준은 박규수의 이 글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는 것이다. 흔히 위대한 예술가를 논할 때 그의 천재성을 앞세우는데 박규수는 젊은 시절의 추사가 보인 결함까지 말하고 또한 추사를 배우려면 글씨를 모방하지 말고 그의 수련과 연찬을 배우라고 한 말에서 미를 보는 안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목은 사전에서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분별하는 식견'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역사를 보는 안목, 경제 동향을 읽어내는 안목, 정치의 방향을 제시하는 안목,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 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유홍준은 책에서 박규수의 안목에 대해 친구인 안병욱 교수와 논한 일화를 소개했다.
"안 교수, 박규수는 안목이 대단히 높았던 것 같아."
"아니야, 바규스의 안목은 깊었어."
때마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을 만나 누가 옳으냐고 물었다.
"둘 다 틀렸어. 박규수의 안목은 넓었어."
그래서 유홍준은 안목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정치 경제 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을 보는 안목은 어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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