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명작예술감상회-한국화2강 복습2_고려불화의 세계
고려불화에 대해서 따로 다른 자료를 참고할 필요는 없겠다. 민 교수의 강의 교재만 복습해도 고려불화에 대한 미술적 개념을 잡을 수 있겠다. 지난 주 강의 때엔 시간이 촉박해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까지 교재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랴.
<시대적 배경>
◆ 시대 상황
고려시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회화적 관점과 표현은 불화를 통해 나타났다. 고려 때에는 개국 초부터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숭불정책을 펼쳤고 후손에게 <훈요십조>를 남겨 불법을 숭상하고 사찰을 보호할 것을 강조하는 등 국정에 불교가 핵심사상임을 드러냈다.
◆ 불교문화의 성행
왕건이 자손에게 훈계하려고 942년(태조 25년)에 몸소 지은 <훈요십조> 중에서 6조, ‘나의 소원은 연등과 팔관에 있는 바, 연등은 부처를 제사하고 팔관은 하늘과 5악, 명산, 대천, 용신 등을 봉사하는 것이니 후세 간신이 신위와 의식절차의 가감을 건의하지 못하게 하라. 나도 마음속에 행여 회일(會日)이 국기(황실의 제일)와 서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 군신이 동락하면서 제사를 경건히 행하라’ 라고 한 점을 보아 얼마나 불교 의식을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다.
◆ 고려불화의 제작 배경
고려 때에는 불교 회화가 성행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을 이루었으며 고려불화는 국가 정책뿐 아니라 왕실과 관료의 신앙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수월관음도, 서구방, 고려 1323년, 비단에 채색, 165.5X101.5cm, 일본 센오쿠하쿠코간 소장.
◆ 고려불화 제작 기법
고려불화는 고려청자와 함께 한국미술사에 있어 가장 큰 예술적 기량을 보여준 장르다.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까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일본의 사찰은 고려의 높은 불교문화를 부러워하여 고려의 범종, 대장경과 함께 고려불화를 봉안하고 싶어 했다. 이는 당시 일보의 문화적 욕구로서 고려말 조선초에 고려불화가 왜구들의 노략질 대상이 되기도 했다.
우선 제작기법으로 본다면, 첫째 고려불화는 광물질인 석채가 나타내는 깊고도 화려할 뿐만 아니라 금니(金泥)의 화려함이 결합되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한편 완성도 높은 치밀한 형태묘사에 활달한 필선, 짜임새 있는 구성 등으로 회화미를 나타내고 있다.
둘째 비단 위에 붉은색, 녹색, 청색을 중심으로 희색과 황색이 주로 사용되었고, 원색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석채의 귀한 안료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단청의 단순화된 색감과는 다르게 그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그래서 선명도 높은 원색임에도 전체적으로 절제된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는 화면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에서도 색을 칠하여 나타난 복채법(伏彩法)과 더불어 원색 사이에 중간색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 각종 문양과 어우러진 섬세한 표현기법
보상화문과 연화문.
밑그림은 먹선으로 형태의 윤곽을 잡은 뒤 가느다란 붉은 선을 사용해 신체 등의 테두리선을 그렸고 이 테두리 선의 주변은 붉은 색으로 엷게 선염처리하여 입체감을 주었다. 붉은색 불의(佛衣)의 옷주름선 역시 더욱 짙은 자주색의 선으로 굵게 처리해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목은 짧아 삼도가 가슴에 나타나고 통견(通絹)의 불의 안에는 띠매듭을 한 군의(치마)를 입었는데 외쪽 어깨에 걸쳐 입은 불의자락 안에는 내의인 승각기를 묶었던 것이라고 생각되어 장식이 비스듬히 보인다. 이는 14세기 불화에서뿐만 아니라 당시 불상들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적인 옷장식이다.
불의의 무늬로는 연화당초원문, 구름과 학이 어우러진 운봉문, 둥근 꽃문양이 시문되었다.
구름 위에 묘사된 삼단의 팔각연화대좌에는 보상화문, 국화문, 연화문 등이 들어차 있고 그 위를 오색의 영락(瓔珞 구슬목걸이)이 장엄하였는데 고려불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장식대좌이다.
셋째 섬세한 표현기법. 채색과 조화를 이루는 금니는 질감에 따라 굵거나 얇게 사용되었는데 채색을 제거하면 멋진 금선묘(金線描)의 그림이 될 만큼 윤곽선에 금을 다량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풍부한 금니의 사용은 중국이나 일본 불화에서 발견할 수 없는 고려불화만의 주요한 특징이다.
◆ 보상화문
보상화는 연꽃의 변형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꽃이다. 장수와 다남을 상징한다. 보상화문의 기본이 되는 팔메트는 이집트에서 기원전 16게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알렉산더왕의 동방원정으로 인도와 중국에까지 퍼지게 된다. 양식적으로 하나의 무늬로 성립된 것은 사산조 페르시아에서였고, 우리나라에선 통일신라시대에 성행했으며 주로 단순한 장식무의나 종교적 건축 장식에 사용되었다.
◆ 연화문
연꽃을 도안화한 문양. 연꽃은 인도와 이집트 등지에서 재배되었고 불교 성립 이전부터 여러 미술품에 장식문양으로 사용되었다. 서양에서는 로터스(lotus: 로터스가 연꽃이라고? 로터스 123, 엑셀 프로그램이 나오기 전 사용되던 스프레드시트. 그게 연꽃이란 뜻이었구만. ㅎㅎ)라고 불렀고 내세에 무한한 생명을 부여하는 재생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집트에선 해가 뜰 때 꽃이 피고 해가 지면 꽃이 진다고 하여 태양숭배사상과 관련지어 신성시했다. 인도의 가장 오래된 문헌인 <리그베다>에서도 우주만물 창조의 상징으로 비유되어 광명의 꽃, 생명의 꽃으로 상징되었다. 불교 성립 후에는 더러운 물에서 자라지만 더렵혀지지 않아 세속에 물들지 않는 청정의 상징으로 부처의 세계를 공양하는 꽃으로 비유되었다.
◆ 연화당초원문
연꽃과 당초를 결합한 무늬로 테두리 또는 바탕 문양으로 쓰인다. 당초는 줄기, 덩굴, 잎이 얽히고설킨 식물 문양을 이른다.
◆ 섬세하고 화려한 필치
고려불화가 회화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것은 섬세하고 화려한 필치 때문이다. 이러한 이선조형(以線造形), 즉 선으로 현태를 나타내는 조형방법은 동양회화의 오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앞서 살펴보았듯이 국화, 연꽃, 구름모양, 봉황 등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양이 한데 어우러져 회화의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적 미를 보여준다.
이공린 작 산장도(북송 후기)는 11세기 후반 작품이다. 담묵의 필선으로 담담하게 자연을 그렸다. 이처럼 동양의 회화는 필선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선묘를 회화의 형식 측면에서 매우 중요시했다.
수월관음도의 불의는 짙은 브라운 계열의 바탕과 다르게 명도와 채도가 높은 선홍색의 붉은 옷으로 그려졌으며 그 위에 금니로 된 망사(시스루)의 얇은 비단천이 드리워져 있다. 여기에도 국화, 모란, 구름, 봉황무늬가 있는데, 동시대인 고려의 상감청자와 나전칠기에서도 볼 수 있다. S자 형의 원권무늬와 연꽃무늬 등은 이러한 전체적인 고려불화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불화의 종류(도상)>
고려불화에 나타나는 도상은 매우 제한적이다 아미타여래도, 수월관음도, 지장보살도 등이 압도적으로 많고 경전을 도해한 경우에도 <관수무량경>과 <미륵하생경>으로 국한되어 있다. 그 외에 호국 기원의 의미를 담은 <나한도>와 <마리지천도>가 있지만 한두 점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고려불화가 복을 비는 구복신앙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정토신앙에 기반을 두었음을 의미한다. 정토란 부처가 사는 세계로, 오직 깨달음에 의한 거룩한 청정광명각(淸淨光明覺)의 세계다.
◆ 미륵하생경도
미륵하생경도는 석가불이 미처 구제하지 못한 중생들을 미륵이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메시아 사상과 같은 내용을 그림에 담은 것이다.
화면의 상부는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서 중생을 성불시키기 위해 설법하는 장면으로 화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상부 중앙에 미륵불이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불상 무릎 좌우로 두 협시 보살이 삼각형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미륵불 주변에 보살 중 10대 제자들이 좌우 협시보살보다 작게 그려져 있으며 이 주위에 제석, 범천, 사천왕, 팔부중 등이 둘러싸고 있다.
화면의 하무에는 미륵불이 마지막 생에 나셔서 출가하고 성불하는 모습을 담은 내용이다. 성안의 궁궐이 장엄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오른쪽은 밭갈이의 춘경과 왼쪽에는 추수하는 추경이 그려져 당시 농경사회의 구조와 사회상, 불교사상을 엿볼 수 있다.
◆ 아미타불
고려불화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도상은 아미타여래도이다. 아미타여래도는 크게 독존, 삼존, 팔대보살도로 나뉘며 이들은 다시 좌상, 입상으로 나뉜다. 이렇게 변화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많다는 얘기다.
우선 아미타불의 의미를 알아본다면, 극락정토에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불(佛)로 정의할 수 있다. <무량수경>에 의하면 과거 세상에 법장 비구가 ‘세자재왕여래’ 밑에서 48가지의 서약을 하고 장기간 수행을 해서 현재의 아미타불이 되었고,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어 그 정토에 왕생을 기원하는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48가지의 서약 중 제18원은 아미타불을 외우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것으로 후세의 중국 일본에서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의 근거가 되었다.
또한 오리엔트(이란 포함)의 메시아 사상도 무시할 수 없다. 아미타불은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로 종래의 자력불교의 전통 중에 타력불교라는 새로운 요소를 가져왔다. 자력불교에서 아미타불은 관상의 대상으로서 의미를 가지며 수행자의 성불 의지를 격려했다.
◆ 아미타여래 독존입상도
아미타여래 독존입상도. 자회, 고려 1286년. 203.5X105.1cm, 일본은행 소장.
이 작품은 1286년 충렬왕 때 자회 염승익이 그린 그림으로 그림 하단에 ‘충렬왕의 총신 염승익이 국왕과 왕비가 살아서는 종신토록 만수무강하고 죽어서는 일체의 장애를 없애 아미타여래를 만나 안락한 세계에 들어가길 바란다’는 축원의 글이 금물로 두 줄 적혀 있고 ‘1286년 5월 선사 자회 필’이라는 명문이 적혀 있어 언제 누가 그렸는지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아미타여래 독존 그림으로 신체는 왼쪽으로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 듯 표현하였으나 얼굴은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어 마치 뒤를 보는 듯하게 그려 특이한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오른팔을 노출하여 길게 뻗어 보이고 왼팔을 꺾어 올린 자세 역시 부자연스럽지만 오히려 강렬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법의에 새긴 보상넝쿨무늬도 지금이 17센티나 되어 지름 8센티 정도의 다른 탱화의 무늬보다 훨씬 큰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중국에서 처음 전해졌을 때의 모습에 가까운 것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갖게 한다. 그러나 초록색 속옷의 새털구름 무늬는 상감청자의 무늬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 고려식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전체적 표현에 있어 상반신은 붉은 가사로 덮고 하의는 녹청색 치마를 입은 모습이다. 또한 표현 방법에 있어 묘법, 즉 선묘로 신체를 표현했고 연화 등 각종 문양은 아주 섬세하고 탄력있게 표현했다. 이러한 섬세한 표현은 가사 치마의 두껍고 힘찬 묘선이 공존하며 다양한 필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와 같은 섬세한 표현은 색상에 있어 과감한 적색과 녹색의 조화로 말미암아 전반적으로 역동감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일본 정법사에 있는 아미타여래 독존입상도는 전형적인 고려풍을 보여준다. 초상화에 주로 쓰이는 좌안칠푼 자세도 매우 자연스럽고 몸에는 새털구름무늬의 초록빛 속옷에 작은 원권무늬의 붉은색 법의를 걸쳤다. 표현이 사실적이고 부드러우며 섬세하다.
◆ 아미타여래 독존좌상도
아미타여래 독존좌상도, 고려 1306년, 162.5X92.7cm, 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크지 않지만 매우 화려해서 눈에 띈다. 화면 아래쪽 대좌 양옆 긴 화기에 “엎드려 비옵나니 세 전하께서 속히 본국으로 돌아오시길 기원하면서 새로 미타 한 탱을 그린다. 시주자는 권복수이고 1306년제 제작했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세 전하란 당시 원나라에 있던 충선왕과 왕비, 그리고 충렬왕을 가리킨다.
오른손을 가슴 위로 들어 엄지와 장지를 맞댈 듯 구부리고 왼손은 가슴 앞으로 들어 옆으로 하여 엄지와 무명지를 맞댄 전형적인 아미타불의 설법인 손모양이다. 두 손과 드러난 발바닥에는 금니의 법륜이 그려져 있으며 넓은 가슴에도 금니의 만(卍)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뛰어난 점은 화대가 매우 화사한 점이다. 팔각의 화대 위에 연화꽃이 있고 그 위로 옷단이 내려오게 하여 일부러 앞을 가리게 하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좌상의 그림이라 하겠다.
◆ 아미타여래 삼존좌상도
이 작품은 아미타여래가 높은 대좌 위에 올라 앉아 설법인을 하고 있으며 대좌 양옆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다. 여래의 법의에는 원권무늬가 또렷하고 두 보살은 투명한 흰 사라를 걸치고 있는데 관음보살의 모자에는 화불이, 세지보살의 모자에는 정병이 그려져 있다.
세지보살은 정확하게는 대세지보살로 불교에서 지혜로 중생을 이끄는 보살을 말한다. 보관에 수병을 다는 것이 특징으로 관음과 함께 아미타불의 협시로 아미타삼존을 형성하는데 단독 형상은 없다.
보살상은 대좌 양옆, 여래의 무릎 아래쪽에 위치하며 신체의 크기도 아주 작게 표현되었다. 이걸 주대종소법이라지. 엄격하고 권위적인 구도를 통해 화면의 통일성을 돋보이게 한 작품.
◆ 아미타여래 삼존입상도
아미타여래삼존입상도, 고려, 100.9X54.2cm, 일본 모아이미술관 소장.
일본 모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어찌 우리나라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없어. ㅠㅠ 삼존 모두 좌안칠푼의 자세로 서 있다. 중생을 극락세계로 맞이하는 모습이란다. 아미타여래는 래영인(사람이 임종할 때 불보살이 그 사람을 맞아준다는 수인)을 했고 보살들은 각기 지물들을 들고 있다. 이 그림에서도 고려 탱화의 엄격성을 보여주며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작게 그려졌다.
삼성 리움미술관에 보관돼 있는 아미타여래 삼존입상도는 협시보살에 세지 대신 지장이 등장했다. 대중적 인기가 많은 아미타여래와 관음, 지장이 트리오를 이루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중생 구제의 의무를 지고 있는 관음보살은 고개를 숙이고 눈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아미타 탱화는 구도가 다르다. 정제된 화면 속에서 역동성을 느끼게 하고 있다.
◆ 아미타여래 팔대보살도
아미타여래 팔대보살도, 고려 1320년, 177X91.2cm, 일본 마쓰오데라 소장.
팔대보살도의 등장인물은 가운데 아미타를 중심으로 관음, 문수, 보현, 미륵, 지장, 금강장, 제장애, 허공장 보살이다. 그런데 일본 나라현 마쓰오데라(송미사)에 소장된 이 그림에는 허공장 보살 대신 대중과 친숙한 세지보살로 대체됐다. 화대 위에 앉은 아미타의 옷자락 하나가 가운데로 내려와서 회화적 표현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이다. 이 형식의 그림은 고려 불화에 몇 점 전해오지 않는다.
◆ 서구방 필 수월관음도
고려 탱화 수월관음도의 기준작은 센오쿠하쿠코칸(泉屋博古館)에 소장된 서구방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작품 왼쪽 하단에 ‘1323년 6월 내반종사 서구방이 그림’이라고 적혀있다. 내반종사는 고려 충렬왕 때 종9품 벼슬이란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보다 채색과 옷무늬의 아름다움이라고. 폭포수를 이루어 물결치는 금강대좌는 청록산수화에서 보이는 필법이고 이는 조선 때 궁중 장식화에도 나타난다.
붉은 색의 법의는 귀갑무늬에 국화꽃 사방 연속무늬로 장식했다. 한쌍의 연잎과 연꽃으로 구성된 타원형 무늬가 화려함을 더해준다고. 사실 이런 평이 내겐 좀 어려워. 어떤 게 아름다운 것인지 잘 모르겠거든. 법의 위에 흰 사라를 걸쳤고 이는 보살의 팔뚝과 법의의 무늬가 그대로 비쳐 섬세함을 더해준다고. 사라가 투명한 옷을 말하는 것인 모양이다. 깁이라고도 하고 명주실로 짠 비단을 일컫는 말이군.
왼쪽 아래에 있는 선재동자는 매우 공손한 모습인데 관음보살의 얼굴은 미수가 없이 정제된 모습이다.
◆ 용왕을 곁들인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고려, 227X125.8cm, 일본 다이도쿠지 소장.
일본 다이도쿠지(교토 대덕사)에 소장된 이 수월관음도에는 용왕과 권속들이 그려져 어떤 스토리텔링이 스민 명작으로 꼽힌다. 이 불화는 기존의 것보다 2배 정도 큰데 그 이유는 이런 스토리텔링을 담아 면밀히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선재동자가 연잎을 타고 오른쪽으로 밀려나 있는 게 다른 수월관음도와 다른 점이라고. 원래 선재동자가 있던 왼쪽 하단에는 수월관음을 공양하는 용왕과 용녀들이 자리차지했다. 이 그림에 나오는 이야기는 강원도 양양에 있는 낙산사 창건설화와 통하는 바가 있는데, 용왕과 용녀의 표현에는 궁중문화의 분위기가 나며 전반적으로 인물묘사에서 몸동작과 복식 등이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음, 그래서 뛰어난 수작이라고.
◆ 혜허 필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혜허, 고려. 144X62.6cm, 일본 천조사 소장
승 혜허가 그린 이 그림 역시 일본 천조사(도쿄에서 가장 큰 절, 센소시)에 소장돼 있다. 그림의 크기는 작다. 특이한 점이, 물방울 속에 관음보살이 있다.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왼손에는 정병을 들었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동시에 손동작은 아주 유연하다. 관음이 법을 구하러 온 선재동자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모습이란다.
◆ 지장독존도
지장보살, 현세의 이익과 내세에서 지옥으로 떨러지는 것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그래서 일반 대중에게는 인기만점이다. 명부의 세계를 주재하기에 염라대왕, 평등대왕 등 십왕을 거느리고 저승에 온 자를 49일 동안 심판해 천상의 자리를 배정한다.
지장보살은 중생이 구제될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삭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니면 머리에 두건을 썼거나. 삭발한 지장은 승형지장, 두건 쓴 지장은 피모지장이라 부른다. 손에는 여의주아 주석으로 만든 석장이 있다. 석장은 대체로 고리가 여섯 개여서 육환장이라고 한다.
일본 선도사(후쿠오카 젠도지) 소장의 이 그림은 세로가 111센티, 다로 43.5센티로 그리 크지 않다. 얼굴은 비교적 앳돼 보이고 머리는 각이 졌다. 승형 민머리다. 육환장을 양산으로 위아래로 잡고 있으며 허리는 오른쪽으로 약간 틀었다. 미묘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데 자태가 온화하다.
찬란한 금빛 두광은 면적이 넓고 가사는 청록색으로 아주 자연스런 옷맵시를 하고 있다. 선묘 역시 유연하게 표현됐다.
◆ 지장삼존도
일본 엔가쿠지(가마쿠라 원각사)에 소장. 지장보살은 많은 권속을 거느리고 있다. 비서실장 격인 무독귀왕, 도명존자를 좌우 협시로 그린 게 지장삼존도다. 이 작품은 지장삼존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지장이 대좌에 가부좌를 틀고 한손엔 여의주를 들고 있다. 육환장은 왼쪽의 도명존자가 들고 있다. 지장의 오른쪽 무독귀왕은 경함을 받쳐들고 있다.
무독귀왕은 왕의 풍모로 품위있게 그려졌고 도명존자는 아라한처럼 수도승 표정이다. 역시 주대종소, 삼각구도로 엄격함을 표현했다. 지장삼존도의 다른 그림들은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를 사천왕으로 대체해 그린 것들도 있다.
◆ 지장시왕도
지장에겐 권속이 많아 좋겠다. 일본 세이카도(도쿄 정가당)문고(사립미술관)에 소장된 지장시왕도를 보면 열명의 시왕이 지장 아래에 배석해 있다. 명부의 실무를 맡은 캐릭터다. 여기엔 열 명이지만 지장의 권속은 20명이 넘는단다. 그냥 통틀어 지장시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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