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산책]시가 있는 여유, ‘마산산호공원’
주택가로 둘러싸인 용마산 중턱 시의거리와 주변 산책로를 걷다
위성지도를 보면, 창원 한 가운데 한일(一)자를 굵은 붓으로 짧게 그은 듯한 모양의 산이 있다. 용마산. 주변엔 용마고등학교와 합포중학교, 합포초등학교가 보이고 나머지는 거의 일반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다. 근처엔 높은 건물도 없다.
이곳은 오래전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이다. 용마산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삼호천,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옛날엔 아마 이곳이 해안이었을 게다. 바다를 매립해 마산자유무역지역을 만드는 바람에 삼각지공원 쯤에서 끝났던 삼호천이 이곳까지 이어진 것이다.
옛 기록에 이곳 용마산은 왜성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조선을 쳐들어온 일본군이 용마산에 성을 쌓고 군자기지로 삼았다는 것이다. 왜군은 주로 바닷가에 성을 쌓았는데 이 용마산성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이곳을 기지로 삼고 서편 해안도로 어디 쯤에 항구가 있어 배를 정박하였다는 내용도 보인다.
용마산 산호공원 안내도.
산중턱에 조성된 운동시설.
산호공원은 인근 주민이 아니더라도 방문하기 편리한 곳이다. 해발 83.5미터밖에 안 되는 산이지만 중턱까지 또 찻길이 나있어 충혼탑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 바퀴 둘러보아도 좋은 그런 곳이다.
마산도서관 옆길로 올라가면, 시의 거리를 지나 급히 우회전해서 조금만 더 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지역의 호국 영령을 모신 봉안각 뒷모습이다.
언뜻 보아 일본의 나고야성처럼 돌을 쌓은 축대 위에 건물을 지은 그런 모습이다. 아마도 일본 왜성을 쌓았던 곳이라 그런 흔적이 남은 것이라 짐작된다. 축대 옆길을 따라 충혼탑으로 향했다. 응달진 곳이라 그런지 축대에 이끼가 많이 슬었다.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모신 봉안각 뒷모습.
충혼탑.
길 끄트머리에 오래된 비석이 하나 있다. ‘대마산항도제선언문’. 1966년 11월 19일에 세웠다고 되어 있다. 문학과 예술의 도시 마산의 전통을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개최한 축제였던 ‘마산항도제’ 1회가 열리던 시기에 세워진 비석이라고 한다.
마산항도제는 1956년 마산문화협의회에서 ‘마산종합문화제’를 창설한 이후 1960년 마산항도제, 1966년 대마산항도제로 이어 오다 1971년 중단되었다가 1974년 마산예총제로 부활했으나 지속하지 못하고 1980년 다시 부활, 1992년 마산예술제로 개칭된 이후 지금에 이른다.
목발 김형윤 불망비.
김세익 시인의 ‘석류’ 시비.
창동허새비 이선관 시인의 시비.
이석 시인의 ‘봉선화’ 시비.
산호공원의 역사를 방증하는 듯한 밀로의 비너스 석상.
충혼탑을 보고 다시 돌아 나왔다. 주차장 인근에 눈에 익은 이름의 비석이 보인다. ‘김공형윤불망비(金公亨潤不忘碑)’. 김형윤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을 괴롭히던 일본 헌병의 눈을 뽑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 ‘목발(目拔)’로도 알려진 언론인이다.
불망비를 조금 지나면 국민교육헌장비가 있고 좀 더 걸어가면 현촌 김세익 시비가 나온다. 현촌 김세익은 1960년 마산문협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던 시인으로 이화여대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3·15의거와 관련해 ‘진혼가’를 지었는데 그 시는 국립3·15민주묘지에 기념시비로 세워져 있다. 이곳에 세워진 시비는 ‘석류’라는 시다.
체육시설을 사이에 두고 김세익 시비 반대편엔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깔끔한 시비가 또 하나 있다. 창동허새비로 불리는 이선관 시인의 시비다. 지난해 2월 세워졌다. 시비에 새겨진 시는 이선관 시인의 대표적인 시 ‘마산, 그 창동 허새비’다. 시비에는 이선관 시인의 얼굴 캐리커처도 새겨져 있다.
아, 산호공원 시의 거리를 무심코 거닐다가도 유난히 눈에 띄는 조각품 두 개가 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밀로의 ‘비너스’다. 요즘에야 이런 조각상을 만들어 공원에 세우는 사례가 있으랴만 불과 30~40년 전엔 이것도 하나의 유행이었다. 이 조각품들은 산호공원이 제법 오래된 공원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약간 비탈진 길을 내려가면 이석 시인의 시비가 있다. “봉선화/그 푸른 잎새 속에/층층이 밝은/초롱을 걸었다/한 알의 꽃씨 속에 잠자던/여인의 피가/이 여름 봉선화로 피어…” 함안 출신인 이석 시인은 마산에서 20년을 살았다고 한다. 마산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김춘수, 김남조, 김세익 등의 시인과 어울렸고 논팔아 친구들과 술을 마실 정도로 애주가였으며 호탕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합포의 얼 기념비.
이원수 시인의 ‘고향의 봄’ 노래비.
이광석 시인의 통일염원비.
김태홍 시인의 ‘관해정에서’ 시비.
시의 거리 입구 타일벽화 위에 늘어선 시비들.
이밖에 산호공원 시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시비들은 이은상의 ‘가고파’, 이원수의 ‘고향의 봄’, 이광석의 ‘가자! 아름다운 통일의 나라로’, 이일래 ‘산토끼’, 김태홍 ‘관해정에서’, 김용호 ‘오월이 오면’, 정진업 ‘갈대’, 박재호 ‘간이역’, 천상병 ‘귀천’, 권환 ‘고향’ 등이다.
권환의 ‘고향’부터 이은상의 ‘가고파’까지는 도로변 타일벽화 축대 위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모두 마산이 낳은 걸출한 시인들이다. 위쪽에 있는 다른 시비들과 달리 시선이 잘 가지 않는 위치라 아쉽다.
시의 거리에서 용마산 산정 쪽으로 산책로가 나있다. 얼마 안 되는 높이라 쉬 올라갈 수 있지만 연세 드신 분들을 위한 배려로 나무 데크를 설치해 더욱 편안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물론 데크 통행로 주변엔 돌계단도 있고 그 옆으로 흙을 밟으며 오르는 길도 열려 있다.
시의거리에서 용마산 산정으로 오르는 길.
전망대 인근, 주말이라 나들이객들의 모습이 제법 있다.
방송중계기를 지나 내려가는 산책로.
방송중계소가 있는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은 나무 데크로 넓게 설치되어 있었다. 오른쪽으로 무학산과 정면으로 마창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마산시가지가 발아래 펼쳐져 있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이런 것일 게다.
내친김에 마산만 가운데 최치원 전설이 흐르는 돝섬을 찾아봤다. 서광아침의빛 아파트에 가렸다. 아쉬움을 한숨으로 날려버리고 고개를 돌렸다. 올망졸망한 주택들의 지붕이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서쪽으로는 자유무역지역의 공장건물들이 펼쳐져 있는데 푸른 지붕들이 유난히 많다. 그 왼편으로는 팔용산이 고개고개 능선을 이었다.
용마산 중턱 언덕배기에 선 충혼탑 너머로 산성산이 위용있게 선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다시 내려오는 길 전망대 옆에 있는 바위에 올라섰다. 낭떠러지다. 둘 셋 정도 햇볕을 받으며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수천 간 이 형태였을 텐데, 이 땅을 살다 간 수많은 사람이 이 바위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았으리라.
주말을 맞아 산호공원에서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시민이 제법 있다. 이런 도심 공원은 인근 주민들에게 건강을 제공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조금 일찍 마치는 날, 어스름 초저녁에 나와봐도 좋겠다. 마산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니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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