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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06:46

[도심산책]옛창원의 중심 남산 봄볕에 취하다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서상동·중동에 둘러싸인 남산공원


날이 많이 풀렸습니다. 해가 다니는 하늘길도 훨씬 길어졌어요. 퇴근 시각 해를 못 본지 불과 며칠 전인 것 같은데 어느새 해는 서산 너머 머문 채 직장인들의 퇴근을 기다려주네요. 그렇게 봄은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어요. 며칠 지나지 않으면 우수, 경칩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이런 계절 주말을 이용해 도심 작은 공원에라도 나가 봄볕을 즐기면 또 얼마나 행복하랴 싶어요.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서상동·중동에 둘러싸인 나지막한 산이 있는데요, 해발 100미터, 산의 높이나 모양새, 규모 뭐 이런 걸로 치자면 정말 볼품없는 산이에요. 이름도 그 흔하디 흔한 ‘남산’이죠. 그런데 이 볼품없는 동네 야산이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창원의 중심으로 위상을 지켜온 듯합니다.


며칠 전 산책을 하면서 그걸 느꼈어요. 그 느낌은 차차 걸어가면서 풀어내기로 하고요, 읽으면서 함께 걸어간다 생각해주세요. 지도에서 보듯 우린 남산공원의 입구인 일주문으로 들어가서 한 바퀴 돌고 동쪽 끝 중동 쪽으로 나올 거예요.



남산공원 위성지도. 하얀 선이 오늘 이동경로.



남산공원 표지석.



'숭의문'이라는 현판을 달아놓은 일주문.


버스로 이곳을 찾는다면 ‘창원여중’ 정류소에서 내리면 되고요, 차로 온다면 목장원 위 ‘남산공원’ 표지석 오른편으로 20면 정도 규모의 주차장이 있으니 이용하면 됩니다.


, 이제 출발해봅시다. 이번 산책길에서 맨 먼저 만나는 게 ‘남산공원’이라는 독특한 서체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입니다. 2004년 서상지구 택지 공사 중에 채취한 거라 해요. 글씨는 서체로 보아 허재 윤판기 선생의 것이네요.


왼쪽에 ‘도심속 거님길 안내도’가 있습니다. 이곳이 사파동까지 이어지는 도심 거님길의 시작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옆에는 남산공원 안내도가 있습니다. 항공사진으로 조감도를 만들었네요. 주변 마을에서 남산공원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 위치는 북쪽 ‘현재위치’이고 우리는 일주문을 지나 서쪽으로 갔다가 다시 동쪽 끝으로 갈 거예요.


일주문을 만나 카메라를 들이댔어요. 아침이라 역광에 일주문이 선명하게 망막에 비치지 않는군요. 가까이 가봅시다. 한자로 崇義門(숭의문)이라고 적혀 있네요. 정의를 숭상한단 뜻이겠죠. 중간에 있는 ‘義’자가 해독하기 좀 어렵네요.



속리산 정이품송 2세 소나무.



창원대도호부연혁비.



상봉암.


일주문을 지나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산책로가 저쪽 언덕 위로 이어져 있어요. 몇 걸음 걷다가 왼쪽에 무슨 팻말이 보이네요. 무슨 기념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나무들만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데…, 무슨 내용일까, 무척 궁금해졌어요. “정이품송 후계목 :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하는 중 소나무 가지가 처져 있어 걸리게 되는 것을 나무가 저절로 들어서 지나가게 했었다고 한다. 후에 세조가 나무에 정이품 벼슬을 내렸다고 해서 정이품송이라 불린다. 이곳의 정이품송은 충북 보은군에 있는 천연기념물 103호 정이품송의 꽃가루를 가루받이하여 키운 묘목을 2001년 현 장소로 옮겨 심은 것이다.”


아하! 그러니까 이게 그 유명한 속리산 소나무의 자손이군요. 나무 나이 열다섯 살이라 그런지 아직은 모양새가 엉성하기도 하고 앳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제법 위용을 자랑할 만한 비석이 눈에 들어오네요. ‘昌原大都護府沿革碑(창원대도호부연혁비)’. 비석 뒤편에 창원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아래에는 창원의 옛 지도가 그려져 있고요. 한자가 많아서 읽기 쉽지 않은데, 천천히 읽어내려가면 몰랐던 창원의 위상을 알게 되네요.


하나만 소개하면, 창원부 서쪽에 조창(마산 창동)을 두었는데, 이게 서울서 가장 먼 곳이었고 주변 김해·웅천·칠원·함안·의령·진해·고성·거제까지 관장하였다고 하네요. 예부터 창원이 이 지역 중심지였다는 방증입니다.


, 중심지라는 말이 나와서 덧붙이는 말인데요, 이 산 이름이 ‘남산’인 이유 아시나요? 남산의 북쪽인 지금의 의안동 일대가 옛날 창원의 중심지여서 그래요. 옛날엔 이곳에 성곽이 있었다 해요. 또 중심지라는 증거로 옛날 국립학교였던 창원향교가 이곳에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이곳을 중심으로 북쪽은 북면, 동쪽엔 동읍이 있고 남쪽에 해당하는 명곡, 명서가 남면, 그리고 서쪽엔 지금의 마산인데, 내서가 서면에 포함되었어요. 서면 소재지 안쪽이어서 내서라는 이름이 붙었고 외서는 지금의 회원동 일대라고 해요.


연혁비 옆에 희한하게 생긴 바위가 있네요. ‘相逢岩(상봉암)’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아마도 해마다 추석 때 열리는 만날제를 기념해서 설치했겠죠. 이제 슬~ 서쪽 언덕으로 걸어가 볼까요? 평일 오전인데도 산책을 즐기는 시민이 종종 보입니다.



남산 정상에 있는 환호.



환호 옆 서상대와 산신단.



망루 유적. 네 개의 기둥을 꽂아 현장을 보전했다.


산책로 옆 자드락에 고동색 나무 벤치가 여러 개 놓여 있습니다. 모두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네요. 각기 다를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한 배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덕 아래에 간판이 세 개 있습니다. 남산유적을 설명해놓은 안내판이군요.


“남산유적 : 경남도기념물 201(19971231일 지정). 면적 5081. 유적건조물, 유물산포지, 유적산포지,유물분포지, 유적분포지. 창원시 서상동 남산 내. 남산유적은 1996~1997년 유적발굴조사에 의해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기시대 환호 유구와 각종 취락 시설이 드러나 발굴지역을 보존하게 되었다. 청동기 시대와 삼한시대의 방어시설인 환호와 집터, 저장시설, 노개부지와 폐기구덩이 등에서 붉은간토기(紅陶) 등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와 삼한시대의 각종 토기, 간돌검(마제석검), 반달돌칼(반월형석도) 등의 석기류, 골각기류 등 총 339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답니다. 온 마을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집이라면, 아무래도 사회적 계급이 높았던 사람이겠죠? 언덕 위에는 유성 떨어진 크레이터처럼 움푹 팬 구덩이가 있습니다. 환호라고 하는 겁니다. 이 환호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인데 이 속에서도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해요. 환호의 규모는 깊이 2~4미터, 너비 4.5~10미터, 길이 200미터 이상의 대규모로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굴조사된 환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언덕 위에서 환호 주위를 따라 돌다가 오른쪽 아래에 화강암 비석이 몇 개 보입니다. 잔디를 밟으며 내려가 보죠. ‘서상대’ 그리고 ‘산신단’. 이곳이 행정구역상 서상동이라서 서상대라고 붙였을 테고 산신단은 이곳에서 산신께 제를 올리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와 단의 모양새가 썩 전통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옆에 있는 석등도 그렇고요. 석등 안에 초가 켜져 있는 것을 보면 제단이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다시 언덕, 사실 남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 이곳이 산마루죠. 이 산마루 환호 옆에는 네 개의 나무 기둥이 박혀 있는데, 망루지 유적입니다. 물론 망루의 역할은 적의 침입을 조망하는 것이죠. 망루는 네 개의 기둥을 가졌는데 기둥의 위치로 보아 거의 정방형을 띠고 있네요. “370×350㎝로 방형이며 기둥구멍의 크기는 직경 80㎝”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습니다.



황시헌충절각병자호란 때 순국한 황시헌을 기리는 충절각.



고향의봄도서관 쪽에서 바라본 산마루, 그리고 일광욕 벤치.


산책로는 산마루에서 빙 둘러서 다시 창원대도호부연혁비가 있는 쪽으로 이어집니다. 하늘이 참 맑습니다. 천주산에서 시작된 산등성이는 시계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정병산, 대암산, 비음산, 불모산, 안민고개를 지나 장복산으로 이어집니다. 환호 주변을 따라 돌다 보면 맞은 편, 남쪽으로 ‘고향의봄도서관’ 가는 길이 나옵니다. 저 길은 거님길 1코스이기도 합니다. 저쪽으로 내려가면 병자호란이 있었던 조선 인조 시절 충신 황시헌 공을 기리는 충절각이 있지요. 예전에 찍은 사진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 창원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콘텐츠 중에 ‘문창제놀이’란 게 있는데, 이 놀이가 황시헌과 관련이 있답니다. 황시헌이 순국하던 상황을 극으로 꾸민 문창제놀이를 보신 분은 쉽게 이해가 되겠는데, 당시 청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도피했고 항복을 강요받았지요. 그때 창원대도호부사 백선남이 황시헌과 함께 경기도 파주로 군사를 이끌고 갔는데 잠복해있던 청나라 군대에 전멸당하고 말았지요.


부사가 죽으면서 부하인 황시헌에게 관인을 맡겼는데, 청나라군은 그 관인을 뺏기 위해 황시헌의 오른팔을 자르고, 황시헌이 다시 왼손에 관인을 움켜쥐자 왼팔을 자르고, 다시 관인을 입에 물자 목까지 잘랐다고 하지요. 그런 황시헌이었기에 청나라 군사들도 황시헌의 충절에 혀를 내두를 법도 합니다. 황시헌은 훗날 현종 때 공조수부정랑 벼슬을 추서받고 이곳 충절각에 모셔지고 있답니다. 원래 읍성 서문밖에 있던 것을 2007년 이곳으로 왔다고 합니다.


오늘은 충절각까지 내려가지 않고 산책로를 따라 더 걸어봅니다. 참 언덕 주변을 돌다 보면 이 산꼭대기에 일광욕을 위한 누운 벤치가 있다는 걸 눈치 챘을 겁니다. 주변 풍광과 어울려 멋진 장면을 연출합니다. 가서 한 번 누워볼까 하다 왠지 좀 쑥스러운 느낌이 드네요. 그냥 산책로를 따라 내려갑니다.


남산공원의 산책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양옆에 나란히 서 있는 나무들의 운치도 좋고요.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해요. 곳곳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밤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아요. 가운데 있는 운동장 가장자리엔 빙 둘러서 체육시설이 있는데,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 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도 많네요.



통일염원탑과 통일서원비.



창원 캐릭터가 있는 분수대.



창원군민헌장비.


길을 따라 계속 가면 오른쪽으로 테니스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이 주변은 편백숲으로 이루어졌어요. 2011년 창원시가 1000만 그루 나무심기 사업을 펼치면서 이곳에 편백을 심었다고 하네요. 더 가면 창원의 캐릭터 창이와 원이가 있는 분수대가 나옵니다. 아직 겨울이라 운영하진 않군요. 지난 추석 이튿날 만날제 행사 때 가동되는 것을 봤는데, 조명의 색깔이 다양하게 변화하는데 참 멋진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 앞에 씩씩하게 생긴 탑이 하나 있는데, ‘통일염원탑’이라고 적혀있네요.


탑 옆에 ‘통일서원’이란 제목의 비석이 있는데 내용을 한 번 읽어볼까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조국강산/겨레도 나라도 하나이기에/피와 사랑으로 한덩이 되어/우리 손으로 통일을 이루오리라.” 통일 염원을 가슴에 새깁니다. 이 통일서원 비석 뒤에는 북한지도를 그리고 이북 5도 사람들의 이름과 모임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동쪽으로 큰 망루가 보입니다. 이쪽으로 가는 길은 세 갈래입니다. 가운뎃길로 걸어갑니다. 제법 숲 속을 걷는 기분이 납니다. 이 숲을 벗어날 즈음에 또 비석 하나를 만납니다. ‘창원군민헌장비’. 아마도 예전 창원군이었을 때 세워진 비석인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창원도 역사적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변천했습니다.


고대엔 경남 해안에 할거했던 포상8국 중 하나인 골포국이 옛 마산 일대에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까지 포함했을 것 같아요. 신라 문무왕 때엔 굴자군 안에 골포현이 있었다고 그래요. 그러니 이곳은 굴자군에 속했겠지요. 그러다 신라 경덕왕에 이르러 의안군으로 개칭이 되고 고려 후기 합포현(골포현)이 회원현으로 개칭되면서 의안군에서 독립됩니다.


조선 태종 때에 이르러 회원현과 창원지역의 의창현이 통합하면서 처음으로 창원도호부가 생기게 되지요. 하지만, 창원부도 다시 여러 번 이름이 바뀝니다. 창원군으로 되었다가 다시 창원부, 창원군, 창원부로 거듭되다가 1910년엔 마산부를 거쳐 1914년 마산부와 창원군으로 또 나뉘지요. 창원군은 또 한동안 의창군이었다가 창원시로 이름이 바뀌었지요. 지금은 마산과 진해를 통합해 창원시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고요, 언제 또 이름이 바뀔지는 두고 봐야 알겠죠.


지명의 변천, 좀 복잡하긴 해도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지역의 역사를 꿰뚫어보는 듯해서 재미있어요. 창원군민헌장비를 보면서 머리가 좀 복잡해졌는데, 이제 그런 것 없이 쭉 걸어봅시다.



남산루를 떠받치고 있는 돌기둥.



남산루 정면.



남산루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서상동 마을로 향해요. 야간에도 사람들의 통행이 많으니 길가에 키 작은 조명등들이 띄엄띄엄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네요. ‘남산루’. 너른 광장 건너편에 있는 큰 누각이 남산루예요. 대단한 위용을 뽐내고 있네요. 특히 누각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들이 멋져 보입니다. 아이랑, 아니면 연인이랑 같이 오게 되면 숨바꼭질 한 번 해보세요. 아주 재미있어요.


누각엔 순서대로 자축인묘…, 열두 띠를 나타낸 지신상이 그려져 있어요. 자기 띠를 찾아 보는 것도 재미겠죠. ‘남산루’란 현판은 반대쪽에 걸려 있어요. 계단이 좀 색다르죠? 계단참 아래쪽은 돌로 되어 있고 위쪽은 나무로 되어 있어요. 누각의 아랫부분은 돌기둥, 윗부분은 나무로 지어진 것과 어울리게 설계하였네요.


남산루는 촉석루나 영남루 이런 곳과는 달리 신을 벗지 않고 올라가도 됩니다. 누각이라 해서 멀리 멋진 경치를 감상하기엔 가로막힌 숲으로 한계가 있네요. 대신 서쪽, 환호가 있는 방향은 푸른 하늘과 어울린 경치가 만족할 만합니다.



동쪽 중동으로 향하는 산책로.



산책로 끝에서 만나는 39사 터.


남산루에서 내려와 동쪽 하신길로 향합니다. 이 산책로는 비포장입니다. 그래서 능선을 타는 느낌이 듭니다. 마을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산이어서 그런지 오래된 무덤이 많네요. 굳이 공동묘지로 지정된 건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마을 인근 야산에 무덤을 썼던 옛 장례풍습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더는 이곳에 무덤을 쓸 일 없으니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무덤도 사라지겠지요. 창원은 역사 변천만큼이나 변화가 심한 곳이니까요. 호주의 캔버라를 모방해 인위적으로 개발되다 보니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이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에요.


산책로 끝에 다다랐어요. 오른쪽에 옛 39사 터가 보여요. 군대가 빠져나간 자리엔 듬성듬성 건물이 남아있긴 하지만 썰렁해요. 공사 중인 곳도 보이군요. 이곳은 곧 아파트 단지와 공원으로 바뀌겠죠.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데크 계단이 나와요. 비로소 산책로를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서상동과 중동이 갈라지는 골목을 빠져나오면 버스가 다니는 큰길을 만나게 됩니다. 함께 걷는 동안 봄이 오는 소리 듣지 못하셨나요? 짧은 거리 긴 여행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잘 가요.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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