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꽃처럼 바람처럼(2)
(전편 줄거리) 조선 중기 시락마을은 평화스럽습니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논에 나와 농요를 부르면서 모를 심습니다. 점심참이 왔을 때 주인공 강신우는 촌장에게 이번 단오씨름대회는 이웃 어신마을과 공동으로 열자는 제의를 합니다. 촌장도 마을 대항으로 단옷날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는 판단에 어신마을에 기별을 넣습니다.
단옷날,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하고 남자들은 씨름대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씨름대회에는 어신마을 출신 천동석이 참여했습니다. 그는 몇몇 패거리를 이끌고 장터를 돌아다니며 못된 짓을 일삼는 건달패의 우두머리입니다. 천동석은 불리하다 싶으면 비열한 수법도 얼마든지 쓰는 야비한 사람입니다.
강신우는 결승에서 1승을 거둔 후 두 번째 판에서 눈에 모래를 뿌려 반칙을 한 천동석에게 패하게 됩니다. 마지막 판에서 강신우는 천동석을 번쩍 들었다가 내동댕이칩니다. 천동석이 강신우에게 비참하게 패하자 앙심을 품고 그날 밤,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강신우를 흉기로 찌르며 공격합니다. 함께 술을 마신 친구이자 동생의 남편인 최해원까지 폭행하려는 순간 ‘땅땅’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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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따당! 땅!”
갑자기 들려오는 기분 나쁜 소리에 흉기를 들고 해원을 공격하려던 천동석의 똘마니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천동석을 돌아봅니다.
“형님, 이게 무슨 소리요?”
“난들 아나. 분위기가 심상찮으니 일단 여길 뜨자.”
천동석 패거리는 뒷산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신우도 처음 듣는 소리여서 불안해졌습니다.
“여보게 신우, 우리도 여기에 있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겠어. 일단 집으로 가세.”
해원은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신우의 팔을 어깨에 걸고 부축을 했습니다.
“이거 순식간에 처지가 바뀌었네, 그려. 허허허. 자네 이제 술이 다 깬 모양이군.”
“배에서 붉은 샘이 흐르는데 자넨 입에서 농담이 나오나?”
신우와 해원이 집에 도착했을 때 화선이 사립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선 역시 날카롭고 섬뜩한 소리에 오빠와 남편이 무사한지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오세요?”
그렇게 말을 꺼내면서도 화선은 남편이 오빠에게 부축 당한 게 아니라 오빠가 남편의 부축을 받은 게 이상하다 여겼습니다.
“어찌 이번엔 오라버니 혼자 술을 마셨수?”
“여보, 그게 아니라….”
“아이구, 오라버니 이게 웬일이우? 어쩌다?”
“별것 아니다.”
“일단 방으로 들어갑시다.”
해원은 아내에게 물과 소독할 것을 준비하라 하고 신우를 부축해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누워있게. 퍼뜩 의원을 불러옴세.”
“괜찮아. 지혈하고 조금 있으면….”
“무슨 소리야?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구.”
해원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침 화선이 물을 대야에 담아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여보, 의원을 불러올 테니 잠깐 오빠를 간호하고 있어요.”
“마을 공터 쪽에 분위기가 심상찮던데,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해원은 마을 뒤쪽으로 돌아 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씨름판이 벌어졌던 마을 공터에선 외부인들로 보이는 그림자들이 웅성거렸습니다. 해원은 무슨 일인가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공터로 갈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보오, 의원 계신가?”
해원은 목소리를 낮춰 의원을 불렀습니다. 안에서 기척이 없습니다. 해원은 속이 탔습니다. 혹시 의원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기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보시게. 이보시게. 의원! 안에 안 계신가?”
“무슨 일이시오?”
의원이 대문을 배꼼 열고 내다봤습니다.
“큰일 났네. 강신우 알지? 그 친구가 칼에 맞았네. 얼른 치료 준비해서 같이 좀 가주시게.”
의원은 주춤했습니다.
“지금 우리 마을에 왜놈들이 쳐들어왔다 하오. 돌아다니다 잡히면 죽은 목숨이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신우가 어찌 될지 모르는데…. 그러지 말고 좀 따라오시게.”
“아이 참.”
의원은 머뭇거리면서도 치료도구와 약재를 챙겨 해원을 따라나섰습니다. 두 사람은 몸을 숙여 주변 동정을 살피면서 이동하였습니다. 다행히 왜군들은 공터에서 군막을 설치하는지 바쁘게 움직이고 집들이 모여있는 산 아래쪽으로는 오지 않았습니다. 겨우 해원의 집에 도착한 의원은 신우를 치료했습니다.
의원에게서 마을에 왜군들이 쳐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신우는 깊이 고민했습니다. 왜군들이 어두운 밤을 타서 상륙했다면 분명히 날이 샐 때까진 크게 소란을 벌이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치료가 끝나자 신우는 의원에게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을 공터에 진을 진 녀석들이 분명히 왜놈들이라면 내일 아침 이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게 분명합니다. 내일 새벽닭이 울기 전에 뒷산으로 가서 몸을 숨기세요.”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신우는 일찍부터 왜군들이 집집이 돌아다니며 식량과 먹을 만한 것들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러더니 또 한 무리가 마을을 돌면서 일을 할만한 남정네와 아낙들을 끌고 갔습니다. 왜군들은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칼을 휘둘러 죽거나 다치게 하고 먹을 만한 것을 챙겨서는 집을 불태우기도 하였습니다.
새벽부터 산 속에 대피해 있던 신우와 화선, 해원은 왜군들의 움직임을 관찰했습니다. 왜군들은 이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조선 침략의 교두보로 삼을 모양입니다.
“이 사실을 관아에 알려야겠어. 이 보게 해원, 좀 더 안전한 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게. 난 어서 관아에 갔다 오겠네.”
“무슨 소린가? 그 몸을 하고서. 내가 다녀옴세.”
해원은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뒷산을 넘을 요량으로 능선으로 향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해원은 산 속에 대피해있던 촌장과 마을 사람 몇몇을 만났습니다.
“아, 해원이 아닌가? 자네도 일찍 마을을 빠져나왔구먼. 다행이네. 얼마 전 부산포로 쳐들어온 왜군들이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가는 모양이야. 그런데 어딜 가는가?”
“진해 관아에 이 사실을 알려야지요.”
해원이 다급하게 말하자 촌장이 말렸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군에서 벌써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네. 아침 일찍 봉화를 띄웠으니 곧 수군과 육군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게야.”
촌장과 일행, 해원은 신우 남매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이들은 마을에 있는 왜군들을 다시 관찰하고 산속에 숨을 만한 곳으로 갔습니다. 이곳에는 어신마을 사람들도 왜군을 피해 숨어들어와 있었습니다.
“일단 여기 숨어지내면서 상황을 살펴보세.”
촌장은 뒤를 따르는 신우와 일행에게 말했습니다. 언제 조선군이 마을에 올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왜군들에게 잡혀 있는 마을 사람들을 빨리 구하지 않으면 어찌 될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촌장님, 오늘 밤 왜군들이 잠든 틈을 타서 사람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렇게 놔뒀다간 우리 군이 오게 되면 모두 살해할 게 뻔합니다.”
당장 저 자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신우로선 말은 그렇게 하지만 갑갑하기만 하였습니다.
“저 많은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구한단 말이냐? 돼지처럼 같지도 않은 소리로 꿀꿀대지 말고 그냥 왜군들한테 손들고 가는 게 어때?”
신우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천동석이 히죽거리며 서 있었습니다.
“아니, 저 녀석이!”
해원이 먼저 화를 내며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바로 신우가 해원을 말렸습니다.
“참게. 복수는 언제든 해도 돼.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신우는 천동석을 향해 돌아보며 말을 꺼냈습니다.
“자네는 왜군에게 손들 들고 투항할 생각이 있는가?”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자네 마을 사람들도 왜군들에게 많이 잡혀 있을 텐데 구해야 하지 않겠나?”
“제 몸도 제대로 간수 못 하는 놈이 남 걱정은.”
신우는 천동석이 마을 사람들을 구하려는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도울 생각이 없거든 자네 살길 찾아서 가게. 우리 일에 방해 말고.”
“흥,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나 보네. 의기 내세워 허튼짓하다 다친 놈 여럿 봤다. 어리석은 놈.”
신우의 말에 천동석은 콧방귀를 뀌며 다른 곳으로 패거리들을 이끌고 갔습니다.
“저런, 천하에 나쁜 놈!”
해원과 화선은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신우는 촌장을 비롯한 여러 마을 사람들과 의논한 끝에 오늘 밤 왜군 진지로 정탐을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구하려면 만약을 대비해 낫이든 괭이든 무기가 될 만한 농기구들을 챙겨야 할 필요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어 신우를 비롯한 몇몇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왜군들의 동태를 살펴보았습니다. 막사와 몇몇 집 앞에 경비를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 왜군 장수가 기거하거나 아니면 식량을 모아두었을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신우 일행은 마을 사람들이 갇혀 있을 만한 장소와 왜군들의 경비 교대시간 등을 살핀 다음 무기가 될 만한 각종 농기구를 챙겨 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밤, 신우는 몇몇 몸이 날쌘 마을 동생들을 뽑아서 왜군 진지로 다가갔습니다. 왜군의 무기고를 털 계획입니다. 무기고 앞에는 왜군 두 명이 보초를 서 있었습니다. 신우와 다른 한 명이 날쌔게 왜군의 등 뒤로 다가가 소리없이 처치하였습니다.
무기고 안에는 조총과 칼, 창 등 다양한 무기들이 있었습니다. 신우 일행은 무기를 들 수 있는 만큼 챙기고 나머지는 모두 마을 우물 속에 빠트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왜군 진지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신우는 마을 뒤편까지 내려와 소란스런 왜군들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바보 같은 놈들. 그렇게 많은 무기가 사라졌는데도 못 알아차리다니 어젯밤 보초 선 놈들 모두 집합해!”
왜군 장수 요시다 기요마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부하들을 있는 대로 발로 차고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마을 사람 중에 분명히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간 놈들의 짓일 것이다. 수색대를 꾸려 우리의 무기를 훔쳐간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옛, 장군!”
왜군들은 장군의 말이 떨어지자 무장을 하고 마을 집들을 모두 뒤지고는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신우 일행이 매복해 있는 곳으로 왜군 10여 명이 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습니다. 왜군의 모습은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한 번도 전쟁을 해본 적이 없던 신우와 마을 사람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왜군을 물리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판이니 신우 일행은 오히려 비장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군들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이때입니다. 신우가 공격 신호를 내렸습니다.
“쳐라!”
왜군의 창과 칼을 들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신우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왜군을 공격했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왜군도 미처 방어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땅!”
칼에 맞아 쓰러지던 왜군 한 명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총소리는 온 산을 뒤흔들었습니다. 다행히 총에 맞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신우와 마을 사람들은 왜군이 가지고 있던 무기들을 챙겼습니다. 어느샌가 산 아래쪽에는 왜군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다음주 3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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