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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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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8일, 소년조선일보 4면에 "백골이 진토되어도 고려만 생각할래!" 했다가 비명횡사한 정몽주의 이야기를 다뤘다.

정몽주가 그렇게 운명을 달리한 곳이 선지교다. 우리가 흔히 선죽교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포은(정몽주의 호란 건 다 아시죠잉?)이 죽고 난 자리에 대나무가 자랐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이 선지교에는 아직도 핏자국이 있다는 얘긴데...

소년조선일보에 글을 실은 한국사선생 윤준기는 "아직도 그때 흘린 핏자국이 남아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고 사진에다 설명을 달았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정몽주 사망시점이 1392년이므로 61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현장에 핏자국이 남아있다는 말이, 말이 되냐고!!! 그동안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내렸대? 또 눈은 안 내렸고?

흔히 '선죽교의 피'라는 표현이 여기저기 책이나 드라마 제목으로 쓰이다 보니 정몽주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어버린 감도 있지만 우국충정을 상징하는 이야기가 어긋난 궤도를 타고 흐르는 바람에 지어내고 덧붙인 이야기가 사실처럼 호도된 경우라 하겠다.

개성을 관광하며 선죽교 다녀온 이들이 한둘 아니며 북에서조차 선죽교에 포은의 피가 서려 있다는 말이 없는데 왜 "피가 남아 있다"고 할까? 이러한 이야기 논법이 사실을 왜곡하고 독자로 하여금 허상을 진실처럼 믿게하는 불순한 의도의 글쓰기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갈무리.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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