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아빠다.
청소년문학대상 작품은 좀 구상이 됐니?
산문은, 뭐 뭔가 필이 꽂혀 쓰기 시작한다면야 두어시간 만에라도 원고지 15매 짜리 정돈 후딱 해치울 수도 있겠지만,
전에 보니까 시도 좀 다듬으면 괜찮을 것 같던데...
운문으로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처음 펜을 잡을 때 가장 고민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무엇을 쓸 것인가 아니겠니? 그런데
이 고민은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삶의 카테고리만 떠올리면 당장에 해결이 되지.
먼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잘 살펴봐.
나는 지금 내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가?
아빠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해주는가? 엄마와의 갈등은 없는가? 동생들과는 아주 사이좋게 잘 지내는가?
혹은 우리반 아이들은 공부벌레들로만 이뤄져 학급 분위기가 싸~ 한가?
아니면 여러 조직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구성되어 있어서 왕따 당할까봐 두려운 공간인가?
일어나면 밥 먹고 학교 가고 공부하다 집으로 와서 컴퓨터 조금 하다가 복습 하는둥 마는둥 그저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도는 삶이 너무나도 따분해서 미칠것 같지는 않은가?
생각은 생각을 낳는 법. 첫 생각에서 지쳐버리면 결코 글감을 찾을 수 없다. 스님들이 화두를 하나 정해서 구도정진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스님들은 때론 결코 답을 얻을 수 없는 화두로 몇 달 몇 년을 수행하기도 하지. 이를테면 '부모 살아계시기 전에 과연 나는 뭐였나?'
아버지 조상, 어머니 조상 어느 분의 몸을 이룬 세포였을 것이다 하는 일차원적인 해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님은 너도 잘 알거야.
그 화두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살아있음에 대한 이치를 찾고자 하는 것이야.
법정 스님은 '무(無)' 하나를 들고 용맹정진했지. 얼마 전에 입적한(돌아가신) 그분이 지은 책 중에 '무소유'라는 것이 있는데 '무'라는 화두에서 비롯된 작품이야.
이런 사례들은 또 많은 생각을 낳고 여러 생각들로 이어주기도 해.
'무(無)'는 '유(有)'를 연상시키고 '유'는 '욕심'을 이어주고 '욕심'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을 낳기도 한다. 아빠의 이 마인드맵을 이해할 수는 없을 거야.
물론 우리 큰딸이 '염화미소(拈華微笑)' 고사처럼 부처가 연꽃을 들었을 때 가섭이 미소를 지은 것처럼 알아들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면 기체의 '브라운운동'처럼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타인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
우리 딸이 이젠 생각을 지어볼까.
마인드맵을 활용하면 좀 더 쉽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겠네.
아빠가 간단한 예로 생각지도를 그려볼까?
'구름', '그리움', '님', '핸드폰', '초승달', '아파트 높은 외벽', '컴퓨터'....
이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여 적절한 은유와 직유를 활용하고 운율을 맞추면 괜찮은 시가 태어날 것 같다.
물론 잘난 모든 작품엔 그만큼의 산고(産苦)가 따르는 법이지.
2010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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