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아이들과 함께 산에 걸음을 하다
많고 많은 것이 시간이고(마음 편한 시간은 아니지만) 쌔고 쌘 곳이 갈곳인데 어쩌다보니 주야장천 안방주사로 집구석에만 쳐박혀 뭐하는지도 모르게 하루의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정말 간만에 뒷산에라도 오르자하여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집밖으로 나섰다. 비가 올락말락한다. 거참.
나야 직장 그만 둔 지 1년을 다 채워가고, 아내는 다니는 목욕탕에서 불미스런 일과 물에 치명적인 건강상 악조건으로 일을 접은지 한 달을 다 채워간다. 갑자기 줄어든 생활비로 멀리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 되니 갑갑하기만 하다. 경기가 좋지 않은 탓인지 고용센터에 구직신청을 해놓아도 알선이 거의 없다. 논다고 장독 깰 수는 없는 노릇이고 뭐라도 해야 하는데 어지러운 심정을 달래는데 산밖에 더 좋은 데 있으랴.
큰 아이는 학교가야 한다며 6시 30분까지 이불 속에서 버텼다. 하는 수없이 나머지 식구들만 현관을 나섰다. 날은 벌써 밝았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 막내가 제일 활발하다. 저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엄마 아빠는 아직도 눈에 핏기가 서린 채 비몽사몽간이다. 그래도 둘째 머스마는 금방 깼는데도 싱싱한 활어같이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괜히 힘 빼지 마라."
얼마나 천천히 걸었으면 아파트에서 나와 뒷산 초입에 들어설 때까지 무려 20분이 지났다. 몇 걸음 올라가니 팔각정이 나오고 허리 근육 풀게 설치한 기구가 있다. "쉬자." 사실 얼마 오지 않았어도 시간이 많이 걸렸으니 운동 많이 한 것이다며 이야기를 꺼내고 공감을 했다. 살찐 우리 부부끼리. "자, 돌아가자." 막내가 기구에 재미를 붙였는지 싫다 하고 둘째는 아무 생각 없다. 그냥 가자 하면 가는 것이다.
막내 손목을 잡고 끌었다. 완강히 버티는데 엄마가 "뽀로로 보러 가자." 하니 나보다 빨리 하산길에 나선다. 막내는 요즘 도로 경계석을 타고 걷는 게 취미다. 손을 잡아 주면 "엇자, 엇자"하며 잘도 건넌다. 우리는 팔도 흔들고 몸도 자주 틀면서 빨리 걷는다. 아내도 팔 다리 몇 군데 모기에게 빨대를 꽂혔다.
모기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둘째에게 문제를 냈다. "모기는 무는 것일까? 쏘는 것일까?" "무는 것 아녜요?" 했다가 "쏘는 거네." 했다가 왔다갔다 한다. 문다는 말은 아랫니와 윗니를 이용해 물체를 꽉 조이는 것을 말함인데, 모기가 그렇게 물어뜯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문다는 말은 틀린 것 같은데... 쏜다는 말도 맞지 않은 것 같고 똥침으로 벌이나 쏘지... 입으로 쏘는 벌레 본 적이 없으니...
따지고 보면 파리나 나비와 마찬가지로 주둥이로 쭉쭉 빨아먹는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은데. '모기에게 빨렸다?' 헐. 나비가 꽃을 문다고 표현하지는 않으니 모기도 문다고 표현하면 공평하지 않은 듯하다. 모기의 유전적이고도 오래된 흡혈 행동에 대한 표현의 한계는 아프면 물렸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이기적이고도 표현력 부족에서 온 현상일 뿐이고... 좀 적절한 말이 없을까.
얼마 걷지도 않았으면서 막내가 업어달라고 난리다. 처음엔 제 엄마더러 안아달랬다. 두 번째엔 내가 목말을 태웠다. 많이 타지 않아 그런지 중심을 못잡고 머리카락 다빠지게 어지간히도 세게 손으로 잡아챈다. 집에 돌아오니 큰아이는 아직 출발도 안 했다. TV나 보고 있고 말이야. 우리 도착하는 소리 듣고 후다닥.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오늘 비 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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