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 3권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 3권 (메리 매콜리프 지음·최애리 옮김)
2014년 11월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의 골목길은 책에서 느꼈던 것처럼 그다지 예술적이라거나 낭만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수많은 예술가가 이곳을 거쳤고 또 수많은 예술가가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겠지만 그러한 모습은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긴 혼으로 빚어낸 예술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하려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싶다.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 3권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다시 파리를 여행할 일이 생긴다면 이제는 정말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되새겨보고 싶다는 것이다. 모네와 마네, 드뷔시, 에펠,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이사도라 덩컨, 스트라빈스키, 샤갈, 장 콕토, 피카소, 막스 바코브, 모르스 드 블라맹코, 키스 반 동겐, 모딜리아니, 조르주 브라크, 장 르누아르, 기욤 아폴리네르, 샤넬, 헤밍웨이, 조세핀 베이커….
1권은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로 1871년에서 1900년 사이 모네, 마네, 졸라, 에펠, 드뷔시 등이 활동했던 이야기를 담았고, 2권은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로 1900~1918년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프루스트, 퀴리 등의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3권 <파리는 언제나 축제>는 헤밍웨이와 샤넬, 만 레이, 르코르뷔지에 등이 활동했던 1918년에서 1929년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의 묘미는 거장들의 사연들을 각각 떼어 정리하지 않고 당시 시간대를 기준으로 그들의 소통과 관계를 통찰력 있게 드라마처럼 구성했다는 점이다.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절> = ‘벨 에포크’란 말은 프랑스어 그대로 ‘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이다. 프로이센과 전쟁이 끝나고 민중의 봉기마저 처절하게 짓밟힌 파리. 오히려 아름다운 시절의 시작점이었다. 미술계에선 모네와 르누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이 기성 화단의 무시와 조롱을 받았고 드뷔시는 새로운 화음에 도전했다. 또한, 에펠은 기존의 화강석 자재 대신 현대적인 재료인 철로 작품을 구상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본문을 읽다 보면 ‘어, 이런 거장에게 이런 일이 있었던가?’ 싶은 눈길 끄는 이야기가 많다. “‘최근에 모네를 만났는데, 완전히 파산했더군.’ 1875년 여름, 에두아르 마네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다. 실제로 모네는 자기 그림 중 ‘아무거나 골라’ 열 점에 단돈 1000프랑에 팔겠다고 할 정도로 궁기에 몰려 있었다. ‘그저께 이후로 무일푼입니다.’ 그는 마네에게 보내는 펀지에 썼다. ‘정육점에서도 빵집에서도 이제는 외상을 주지 않아요.’”(113~114쪽)
마네와 모네의 이야기는 ‘풀밭 위의 점심’라는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가 재미있기도 하다. “마네는 이미 1863년 살롱 낙선전(그해 살롱전에 입선하지 못한 전위적 작품들의 전시회)에 출품한 ‘풀밭 위의 점심’으로 파리 비평가들에게 충격을-그리고 모네에게는 영감을- 주었던 터였다. 비평가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간에 모네는 ‘풀밭 위의 점심’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59쪽)
로댕의 이야기도 눈에 띈다. 1877년 살롱전에 ‘청동시대’를 출품하면서 받았던 의혹, 즉 너무 사실적이어서 모델 실물을 본떴을 것이라는 비판 때문에 속상해하는 장면이다. 무죄였으나 간첩이 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에밀 졸라의 <르 피가로> 기사와 관련한 사연도 속속들이 펼쳐진다. 592쪽 2만 6000원.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1900년,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가 파리에 등장한다. 열아홉 살의 풋내기 청년은 자신의 그림 한 점이 만국박람회에 걸린 것을 기뻐하며 자신을 왕이라고 표현할 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 장면으로 시작하는 2권은 전통적 양식에 반발하며 새로운 예술을 구가하던 이들이 각자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피카소와 화가이자 시인인 카사헤마스는 이 시기에 만난 친구다. 피카소의 그림 ‘인생’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림은 온통 푸른색으로 이루어졌으며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피카소의 이 시기를 ‘청색시대’라고 한다. 이 그림은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카사헤마스는 파리를 떠나 있는 동안 폭음을 하며 제르멘에게 열정적인 구혼 편지를 써 보냈지만, 그녀는 이미 결혼을 한 터였으며 도대체 그와 함게 살거나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67쪽) 카사헤마스는 고향 바르셀로나로 돌아가기로 했다며 송별회를 했다. “그날 저녁 모인 사람들은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카사헤마스가 유난히 예민해져서 가끔 분위기를 긴장시키기는 했지만, 대체로 좋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짧은 인사말을 하겠다고 일어선 카사헤마스가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피스톨을 꺼내 제르멘에게 겨누었다”(68쪽)
제르멘이 죽었다고 생각한 카사헤마스는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이 비극적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큰 충격으로 망연자실했고, 여러 해 동안 카사헤마스에 관한 환영에 사로잡히게 된다. 2권에는 피카소 이야기를 시작으로 드레퓌스를 지지하느라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야 했던 프루스트 이야기도 눈에 들어온다. “나중에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 3권인 <게르망트 쪽>을 쓰면서, 드레퓌스 사건이 그 격동의 시절 파리 사교계에 미친 영향을 묘사하게 된다. 그는 이 책을 오랜 벗 레옹 도데에게 헌정했다.”(85쪽) 640쪽. 2만 6000원.
◇파리는 언제나 축제 = 3권은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다시 황금기를 맞이한 시대를 그리고 있다. 재즈의 시대, 아우성의 시대, 광란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시기. 예술계는 거의 멈춰섰지만 과학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게 되었다.
샤넬과 르코르뷔지에의 성공이 급변하는 사회를 대변하는 사례다. 샤넬의 옷들, 코르셋 없는 편안한 티셔츠 같이 남성복에서 영감을 얻은 실용적인 여성 의상은 패션계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화가로서 세상을 바꾸는 대신, 르 코르뷔지에는 이제 건축으로 그 일을 하기에 나섰다. 1921년에 그느 자신이 ‘시트로앙 하우징 타입’이라 부르게 될 것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그는 ‘대량생산 주택’이라 칭했다.”(168쪽)
또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를 게재하면서 일어난 사연도 눈여겨 보인다. 미국과 영국, 아무도 ‘외설금지법’을 어길 엄두를 못 내던 시절이었으니 이 작품을 실은 <더 리틀 리뷰>가 벌금형을 받은 건 당연한 일이겠다. 이런 상황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출판하겠다고 나섰으니 조이스에겐 더없이 기쁜 일이었으리라.
이외에도 ‘잃어버린 세대’라는 표현을 들고 나온 거트루드 스타인, 헤밍웨이 회고, 조세핀 베이커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암사 펴냄. 484쪽. 2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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