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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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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1 12:22

1966년 내가 네 살 때 이 작품이 나왔다. 따지면 나보다 동생인 셈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시대의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은 것은... 뭐, 말 안 해도 딱이네. 옛날엔 척하면 삼척이란 표현을 썼는데... 요즘 바뀌지 않았나?


여튼, 어젯밤 가족들이 자든말든 소리내어 읽었다. 아주 오랜 만에. 그래, 한 번씩 희곡을 소리내어 읽는 게 중요해. 이제야 정말로 말하기를 배우는 거다.


'국물 있사옵니다'는 처음엔 좀 지겹다가 서서히 극의 스토리에 빠져들면서 재미를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주인공 김상범. 입체적 인물. 착한 놈이었다가 서서히 나쁜 놈으로 변해가는... 말하자면 살기 위해 환경에 잘 적응하는 놈이지. 뭐 닮고 싶긴 한데... 난 도저히 용기가 없어서 언간생심인 그런 인물상이거든.


그가 삶의 철학(?)을 바꾸는 데엔 외부적인 환경이 크긴 하지만 난, 궁극적으로 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봐. 그는 이렇게 말해.


국립극단 '국물 있사옵니다' 포스터.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저런 친구들의 상식, 즉 내가 '새상식'라고 부르는 상식으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상범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손해를 보면서 살아가고 있었지. 옆집에서 불쑥 누군가 찾아와 커피통을 빌리자느니, 그런 김에 설탕도 달라느니, 하다못해 자기가 사귀려는 여자를 형이 결혼을 한다든지... 


그가 세상의 더러운 이치를 깨닫는 계기는 웃기게도 '화장지'야. 처음 다니던 회사에서 데모에 휘말려 엉뚱하게도 자신이 주범으로 몰려 사퇴를 하게 돼. 그래서 자그마한 철강회사에 들어갔는데 갑질하는 상사의 닥달에 별 재미를 느끼진 못하며 그저 회사생활을 하는 거지. 


그런 중에 사장이 똥 누러 변소에 갔는데 화장지가 없는 거야. 다시 나와서 화장지를 찾는데 상범이 즉각 주는 거지. 사장 눈에 확 들어온 거야. 게다가 여자 구경하느라고 교회에 갔는데... 거기서 사장을 또 만났지 뭐야. 사장은 술마시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상범은 술도 못하지, 같은 교회 다니는 독실한(?) 신자지.


출세는 그래, 능력하곤 별 상관이 없는 시대였던 거야. 내가 태어났던 그 즈음의 시대가 말이야. 이 희곡을 읽으면서 안성기 주연의 영화 '성공시대'가 떠올랐다. 뭔가 비슷한 느낌. 아마 자료를 찾아 대조해보면 많이 다를 것임에도.


어쨌든 양아치로 변한 상범은 출세가도를 달린다. 자기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던 탱크란 작자도 순간의 기지로 멋지게 해치우고 오히려 그 때문에 일개 과장에서 상무의 자리에까지 오르며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하는 행운을 얻는다. 약간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탱크가 버린 여자와 같이 사는데 어느날 탱크가 찾아와 남의 여자를 뺏어 산다고 회사에 불어버리겠다고 협박하자, 회사 월급날 돈을 강탈당하는 조건으로 더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하는데.... 월급날 총을 들고 찾아온 탱크에게 돈을 다 주자 탱크는 여자를 죽였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상범의 두뇌는 빠른 계산을 했고 돌아서서 가는 탱크의 등에 엽총을 발사한다. 범죄인이 영웅으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암튼 그렇게 출세한 상범의 세계는 끝이 없이 넓어졌다. 사장의 며느리도 상범의 아가리에 들어온 먹잇감에 불과했으니.....


아직도 이 세계는 그런 '상식'이 통하는 것은 아닐까. 작년에 이 작품이 국립극단에 의해 공연되었다고 하니, 어떻게 연출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만... 현대극의 재발견이란 타이틀이 붙었으므로 원작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으리라. 역시 오늘날 사회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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