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추석을 바로 앞두고 벌초하러 간다. 물론 복잡한 토.일요일을 피하고 아버지 시간 내기 편하신 날을 찾다보니 날짜가 밀려 추석 바로 앞 금요일 쯤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좀 편한 구석이 있다. 백부 묘소는 양쪽의 뫼 후손들이 벌초하면서 일정 부분 깎아놓는 덕분에 벌초하기 훨씬 수월하다. 산으로 드나드는 길도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길을 잘 내어놓아서 다니기도 편하다.
반면 증조할머니 산소가 있는 진주 문산 공동묘지에선 상황이 다르다. 할머니 산소의 봉분이 낮아 앞서 벌초하러 온 사람들이 평지인줄 알고 그곳에다 깎아낸 잡풀을 쌓아두는 바람에 더 고생한다.
그건 그렇고 우리가 벌초하러 가면서 기계를 사용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한 4년 되었을까. 아버지와 둘이서 다섯 상부 네 곳을 찾아가며 낫으로 작업을 하다보니 시간도 너무 많이 걸리고 힘들기도 해 사촌들의 도움을 받아 기계를 샀다. 물론 우리는 벌초를 맡았기에 돈을 내지 않고.
아버지도 나도 생각이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다. 십수년 전 농협이 바쁜 도시인을 대신해 산소를 벌초해준다며 광고를 하고 뉴스를 통해 기계로 벌초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산소에 기계를 댄다는 것이 얼마나 불경스러운 일인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기계를 돌릴 때도 우리는 한참동안 낫으로 벌초를 했다.
역시 사람은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나보다. 기계음으로 조상님들이 정신사나울 것이란 생각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기계만 있으면 퍼뜩 마치고 돌아갈 수 있을텐데...
사촌들은 수년동안 날짜가 맞지 않아 벌초를 함께 못했다. 그것이 미안했던지 기계를 사주었다. 이것이 그나마 편하게 벌초를 다녀올 수 있었던 사연이다. 더불어 벌초는 낫으로 해야한다는 고정관념도 서서히 무너졌다.
아버지께 죄송한 게 있다. 예초기로 벌초를 하면서 기계는 아버지 몫이 되었다. 내 허리가 안 좋다며 한사코 기계를 당신의 어깨에 메신다. 한편으론 이렇게 건강하신 아버지가 고맙기도 하다. 올해 일흔 다섯임에도 직장생활을 하신다는 것만으로도 자식들에겐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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