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우리 부부의 대둔산 단풍관광
여기저기 다녀보니 / 2008. 11. 2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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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을 타고 내려온 단풍이 전라도 지역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우리 부부는 대둔산으로 가보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본 대둔산은 참 멋있었습니다. 산봉우리를 잇는 구름다리도 아찔해보이고 바위 위로 타고 올라가는 듯한 빨간 철계단, 무척 호기심을 일게했습니다.
"어쩐지 싸더라"
관광회사에서 발행한 듯한 전단을 어찌해서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단에는 '대둔산+케이블카관광 1만 5000원'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어, 생각보다 싸네." "차비만 해도 갔다왔다 2만 원 넘을 텐데... 단체로 해서 싼 건가." 아내와 나는 뜻밖에 저렴한 여행방법을 알게된 것에 많이 반가워했습니다. 전화를 걸어보니 케이블카 비용은 본인이 지불해야한다고 해서 약간 실망했지만 그래도 차비만 친다고 해도 싼 편이기 때문에 그정도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불만은 없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날 새벽에 우리는 일어났습니다. 전날 김밥도 말고 빵과 음료수도 사놓고,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카메라 등 대부분 챙겨놓았지만 또 빠진 게 없나 확인하며 집을 나섰습니다. 6시 40분이었습니다. 관광회사에서 7시 30분까지 고속도로 진영휴게소로 나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단체관광에 처음 가보는 우리 부부는 많이 설레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들은 어떤 생활을 할까. 아마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일 거라는 추측도 해봅니다. 평일에 등산여행을 할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직장을 다니지 않는 사람일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였습니다. 행여 그사람들이 나보고 무슨 일을 하기에 평일에 여행을 떠나는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하는 쓸데없는 망상까지 연결될 즈음, 아내가 "지원이가 일어났을까"하며 걱정했습니다. 자고 있을 때 몰래 빠져나오긴 했지만 부쩍 요즘 엄마, 아빠를 찾아서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하는데... '어머니 죄송합니다.'
7시 10분에 진영휴게소 도착했습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혹시 관광버스가 너무 일찍 와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터무니없는 기대라는 것이 금세 드러났습니다. 다른 회사 관광버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30분이 되었습니다. 안에서 퍼뜩 휴게소 자장면으로 허기를 달래고 나와보니 아직도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약속시간을 지키는 사람은 우리뿐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8시가 되었습니다. 행여나 금세라도 올까봐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았더랬는데 약간 짜증도 나고 '에라 모르겠다'싶어 그냥 화장실에 갔습니다. 딱 앉았는데, 그때 핸드폰이 떨면서 울어대네요. 속으로, '이럴 줄 알았다.'
40대 중반의 여성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바로 그임을 눈치채고 다가갔습니다. 미안하단네요. 예약 손님이 늦는 바람에 부산서 늦게 출발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면서 식사를 했느냐고 묻기에 우동 한그릇씩 먹었다고 했습니다. 회비를 한사람 것만 받겠단다. 이런 고마울 데가...
그렇게 우리는 버스에 올랐는데 분위기가 어색했습니다.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금산, 강경 가는 분과 대둔산 가는 분을 합쳤습니다. 그래서 회비를 1인당 1만원씩 받겠습니다." 이런 횡재가 싶었습니다. 우리 부부 3만원인데 1만원만 내어도 된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해서 장사가 되나 의아했는데 가이드가 이어서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싸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스폰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금산에서 사슴목장에 들러 상품설명을 들으시고 젓갈백화점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시고 대둔산에 갔다가 오는 길에 홍삼공장에 들렀다 돌아올 것입니다." 쇼핑관광이니 이렇게 싸지 싶으면서도 어쨌든 산에는 가니 뭐 어떠랴 싶었습니다.
스폰서라는 장소를 돌다 보니 2시가 넘었습니다. 그제서야 대둔산으로 간다니 괜히 이 차를 탔다는 후회가 밀려오더군요. 아내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야 모르고 탔지만 원래 이차가 그런 목적으로 다니는 차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속만 탔습니다. 더욱 후회하게 만든 것은 대둔산 산행시간을 1사간 30분밖에 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 금강구름다리 건너고 삼산철계단 오르니 돌아갈 시간이 빡빡하더군요. 대둔산 정상에는 올라가보지도 못하고 시간에 쫓겨 돌아서야 했습니다.
허겁지겁 다녀온 대둔산
대둔산 단풍이 좋다고 했는데 바빠서 단풍 감상도 못했습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괜찮을 거라고 애초 기대했었는데 사람들이 30여 명 타다보니 유리창에 김이 자욱이 서려 바깥 경치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습니다. 시간이 없다보니 오는 길에도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이건 산행도 아니고 등산도 아니고 하다못해 여행이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는 홍삼공장에 들렀다가 인삼시장을 거쳐 돌아왔습니다. 진영휴게소에 다시 돌아오니 깜깜한 밤이 되었습니다. 우리 손에는 싸게 대둔산까지 간 게 미안해서 샀던 1만5000원짜리 새우젓 한통이 들려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참 순진했습니다. 둘이서 1만원으로 대둔산까지 다녀온 것이 남들 쇼핑관광에 들러리 서며 듣기 싫은 상품 설명회에 참석해 고문 당한 대가임을 돌아오는 길에야 깨달았습니다.
속았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하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좋은 경험했다'며 우린 서로 위안했습니다. 오가며 먹으려고 싸갔던 김밥과 음료수는 고스란히 남겨왔습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김밥이 하루좋일 버스 안에 있었어도 맛이 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다음번엔 돈이 좀 들어도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행방법을 택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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