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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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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미술관은 자연스레 자주 가는 곳이 되었다. 전에도 한 번 언급했던 것 같은데, 극단이 창동에 있기 때문이다. 약간만 여유가 생겨도 이 미술관으로, 혹은 창동예술센터 2층 갤러리로 발걸음을 했으니.


엊그제 금강미술관을 찾았다. 연습도 없고 숙제도 없고 해서 합성동 집에서 걷다가 혹은 자전거를 타다가 하면서 회사도 들르고, 도서관도 들르며 시간을 자유롭게 보냈다. 오후 6시 마산의료원 옆 어느 식당으로 정해진 약속에 맞추면 되는 일이었다.


동선 안에 들어온 금강 미술관이었다. 그 며칠 전엔 잠시였겠지만, 문이 닫혀 못 들어갔었기에 길을 지나며, 하나 안 하나 유심히 봤다. 하는군. ㅋㅋ.


들어서는 순간 그림들의 위용이 느껴졌다. 단순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추상 속에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의미가 담겼을 것 같았다.


입구에 있는 설명문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그림 앞에 섰다. 그림을 보다가 폰을 올려 들고 설명문을 읽다가를 반복했다. 그래서인지 그림이 한결 이해되었다.


설명문, 오세영. 


오세영 화백은 1960년 대 중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실험과 표현기법을 연구해 오고 있다. 그는 1979년 도미하여 20여 년간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창작 활동을 하면서 국내 화단이 세계적인 정체성을 얻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회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는 토기나 태극의 괘를 연상시키는 '심성의 기호' 시리즈, 둘째는 올오버(화면전체가 무늬로 가득한 천)풍의 '잔상' 시리즈, 셋째로 전체 화면을 색면으로 나눈 '성' 시리즈다.




작품 시리즈인 '심성의 기호'는 인간의 내면의 심상을 마치 화면에 음악적인 율동감이 느껴지듯이 작가만의 조형언어로 재현해 낸 것으로 그 섬세한 감성과 탁월한 심미안을 느낄 수 있다.


오세영 화백은 평면에 유채, 천, 에나멜 등을 사용하여 재료에 대한 천착과 한국의 고유한 형상과 색감을 사용하여 깊이 있는 화면과 실험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심성의 기호' 시리즈는 사회와 문화, 그리고 예술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를 한국의 정신성을 상징하는 태극의 괘를 소재로 하여 범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동양철학을 다양한 형상으로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이것은 작가 내면의 심상으로 여느 작품에선 볼 수 없는 독창성을 가진다.



오세영 화백의 그림 중에서도 이 판화는 발걸음을 붙잡고 눈길을 끌었다. 나무의 가지와 뿌리를 대조하면서도 본질은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림을 뒤집어도 상관없다. 그러니까 차별이 없다. 뿌리든 가지든 똑 같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오세영 화백은 많은 실험작에서도 일관되게 유지해온 것은 존재와 진정성의 관계다. 이렇게 보편적인 주제로 표현하는 작가만의 고유한 형상은 국내외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현재까지 영국 국제판화비엔날레 옥스퍼드 갤러리상, 독일 슈투트가르트 세계 판화 공모전 그랑프리, 필라델피아 판화협회전 금상 등 해외 유수 기관에서 수상한 바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황영성 화백.


70년대 후반과 80년대를 통해 황영성은 '가족도' '가족이 있는 정원' '소와 달과 가족의 마음' '마을' 우리 마을 이야기 등 마을시리즈를 반복적으로 펼쳐보였다. 물론 이 두 시리즈는 굳이 분화할 필요 없는 동일한 내용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가족과 마을은 떼어 놓을 수가 없으며, 그 속에 등장하는 가축과 나무와 달 역시 전체적 풍경을 이루는 인자로서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금강미술관 2층 전시실 전경.



인간과 가축과 자연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것은 일종의 범신적인 풍경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황영성의 화면은 미분화의 상태가 아니라 확고하게 질서지워진 테두리 속에서 서로 삶을 같이 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가족은 오뚜기처럼 쌓여지지만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이 분명한 윤곽으로 표현되며, 소나 초가의 모습도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제각기 뚜렷한 영역을 지니면서 하나의 공간 속에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동등한 공간의 점유는 서로 겹치지 않는 많은 작은 면들의 분절로 나타나면서 평면성을 고양하고 있다. 그 독특한 기호와 공간의 증식 패턴은 이미 배양되고 있는 것이다.



95년 이후의 작품에선 한층 기호적인 요소의 증대를 목격할 수 있으며 공간의 증식은 균질한 면의 분절로 나타나고 있다. 가족도는 단순한 인간 가족이 아니라 자연의 가족, 만물의 가족으로 탈바꿈된다. 인간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말, 개, 닭, 호랑이 같은 동물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며 나비, 벌, 꽃, 물고기, 과일이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뿐이 아니다. 건물과 도시의 거리와 공장의 굴뚝과 비행기 같은 문명의 산물들도 등장한다. 그것들은 똑 같은 면적 속에 극도로 단순화된 형태로 구분된다. 어떤 대상들을 선택하고 표출한다기보다 정해진 상자 속에 모든 것이 무차별하게 끌어들여지고 있는 인상이다. 인간 뿐 아니라, 인간 주변에 있는 이 모든 사물들이 하나의 공간 속에 같이 참여함으로써 마침내 거대한 가족도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화면에는 서로 다른 인자들이 내뿜는 색깔이 향기로 인해 풍성한 밀어의 화원이 펼쳐지게 된다. 그러고보면, 그의 화면은 많은 색깔과 향기로 가득히 덮여 있는 꽃밭을 연상시키게 한다. 그러나 같은 시기 그의 또 다른 일련의 작품들에선 극도로 색채가 배제된 모노크롬의 기호들이 등장되고 있다. 여러 색채로 표현되었던 사물들은 이제 동일한 색채를 띠면서 실루엣처럼 윤곽선으로만 개별적 속성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는 더욱 기호화, 평면화의 밀도를 고양하는 작용을 한다. 단 색조의 변모가 갑작스러운 현상 같으면서도 사실은 이미 그의 초기  작품에서와 80년대로 전개되는 작품의 영역을 통해 암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대단히 풍요로운 색채 감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실은 대단히 절제된 색체 사용을 지속해온 편이다. 초기의 회색과 청색톤을 기조로 한 작품에서 중도의 짙은 녹색과 청, 황의 바리에이션(변형, 음악에선 변주곡을 뜻함)을 가하던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많은 색채가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비적은 색채의 사용으로 인해 극적인 색채의 효과를 높였을 뿐이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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