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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현재와 과거, 경남의 문화와 전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애착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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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가는 1905년 작곡된 우리나라 최초의 창가(이인식 작곡)다. 귀에 익숙한 "학도야 학도야 젊은 학도야~" 하고 부르는 노래와는 다른 곡이다.(이 부분은 이후에 수정한 부분인데 전욱용 교수가 피드백을 해줘 오류를 수정할 수 있었다. 고마움을 전한다.) 가곡을 시대적 변천사 관점에서 보면 1기는 창가에서 예술가곡으로의 전화기인데 1885년에서 1919년까지로 잡고, 2기는 한국가곡의 정착기로 1920년부터 1949년, 3기는 발전기로 1959년부터 1969년까지, 4기는 가곡의 다양성이 발휘되는 시기로 1970년 이후로 잡고 있다.


3월 14일 오전 10시 30분. 3·15아트센터 제5강의실에서 진행된 창원대 전욱용 교수의 화요명작예술감상회 2강좌 우리 가곡 이야기. 이번 시간은 우리 가곡의 시대적 변천사 1기와 2기의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잠깐 딴 이야기, 지금까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되다 이날부턴 약간 규모가 작은 5강의실로 옮겨 진행된다. 신청 인원이 70명 정도이지만 연극, 가곡, 미술, 재즈, 클래식 등 각자 관심 분야가 있으므로 굳이 관심 밖의 분야에 참석하지 않기에 실제 출석률은 절반 정도로 보면 되겠다.



앞서 언급한 학도가는 아주 귀에 익은 곡이다.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로 종종 들었던 터라 낯설지 않은데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가곡이었다니 새삼스럽다. 1기에 해당하는 이 당시 노래는 대부분은 4.4조 음률에 맞춰 불러졌다. 광복군이 불렀다는 애국가도 마찬가지다. 스코틀랜드 곡 '올드 랭 사인'에 맞춰 불렀는데 희한하게 그것도 4.4조다. 4.4조의 특징이 강한 장르가 바로 창가요, 가사다.


물론 가사의 전신은 또 시조라고 해도 무방하다. 시절가조. 시조를 생각하면 문학과 음악이 벌써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란 걸 알 수 있다. 현재의 가곡이 노래이듯 시조도 노래다. 요즘 현대시조야 노래로 부르진 않지만 옛시조는 시이기 전에 음악이었다. 평시조, 사설시조, 엇시조... 곡에 맞춰 시를 지었으니 말이다.


시조, 가곡, 가사... 이러한 전통적 장르가. 19세기 말 외국 문화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추춤하게 되는데 가사는 창가나 외국민요 등의 곡에 얹혀 불려지게 된다. 그게 창가다. 창가도 3단계로 나뉘는데, 1단계 찬송가, 2단계 외국곡, 3단계 우리나라 사람이 작곡한 창가(학도가)로 변천한다.


학도가의 작곡가 김인식은 애국가, 전진가, 국기가 등을 작곡했고 이상준 등의 작곡가도 이 시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2기 한국가곡의 정착기에는 제법 유명한 작곡가들이 등장한다. 홍난파, 박태준, 안기영, 현제명 등이다. 홍난파 곡 '봉선화'는 창가의 색채를 벗은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가곡이라고 볼 수 있다.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은 민족의 애환을 노래로 지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는데, 어쩌면 이러한 드러난 활동 때문에 홍난파는 일찍 일제의 압력에 굴복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국의 가곡은 이들 작곡가들에 의해 틀이 잡힌다. 홍난파의 음악을 듣고서 현제명의 곡을 들으면 두 사람 간의 화풍? 아니지 악풍(?)에 큰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홍난파는 잔잔하고 현제명은 힘차다. 그것은 홍은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고 현제명은 성악가 출신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지난 주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총 36명이 설문에 참여해 이들이 거론한 가곡(가요나 외국곡 등은 빼고)은 48곡으로 나왔다. 그 중에서 1위를 차지한 곡은 목련화와 가고파다. 두 곡 모두 김동진 곡이란 점이 눈에 띈다.(수정 전 김동진을 마산출신이라고 했는데 이는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착각한 부분이다. 김동진은 북한 출신으로 마산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노래를 작곡한 작곡가로 바로잡는다.)


가고파는 워낙 마산이라는 색채가 강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만 조영식 작시 목련화는 어쩌면 전국의 누구에게 물어봐도 '가곡'이란 화두의 첫머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2위는 그리운 금강산, 3위는 보리밭과 선구자, 4위 청산에 살리라, 5위는 비목, 6위는 그네, 7위 산유화와 동무생각. 8위와 9위는 각 2표 1표씩 얻은 곡으로 몇몇 생소한 곡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공연이든 방송이든 한 번씩은 들어봄직한 곡들이었다.


목련화에 이어 두 번째로 감상한 곡은 서정주 시에 김주원이 곡을 붙인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다. 곡이 어렵다. 현대 가곡의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옛날 가곡은 애창곡이지만 지금은 감상곡 성향이 짙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감상곡으로 '연꽃...'이 선정된 것은 '이런 가곡도 있었나?' 하는 차원에서 들었다. 설문 결과에서 내가 적어낸 곡은 2위, 3위, 7위, 9위를 차지했다. 그러니까 9위를 차지한(1명 투표) 곡은 '금강에 살어리랏다'인데 마치고 회사로 출근하는 길에 계속 이 노래를 흥얼거렸으니 가곡 중에서는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곡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곡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작사작곡이라니... 홍난파, 이은상. 이제 노래를 좋아하려 해도 작가들부터 확인해봐야겠단 생각도 든다. 학교서 배웠던 음악이 사실 좀 맹목적이었지.



다시 변천사로 돌아가서, 홍난파의 봉선화가 최초의 가곡이라고 알고 있지만 박태준의 '동무생각'이 진정한 최초다 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봉선화는 1920년에 기악곡으로 발표되었으나 이후 김형준이 가사를 붙여 가곡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1925년 세계명작곡집에 수록되었고 박태준의 동무생각은 1922년 작곡 발표되었기 때문에 이를 최초로 본다는 시각도 있다.


어쨌건. 동무생각을 세 번째 감상곡으로 들었다. 전 교수의 친구라는 성악가 최강지 교수의 노래로 유튜브를 통해 들었는데 봉선화와 달리 곡에 변박이 들어간다는 점이 독특하다. 노래를 부르는데 박자가 달라진다는 것은 파격이다. 당시로선 특히. 변박의 효과는 긴장감 고조라고 한다.


전 교수는 가곡을 편의상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고 했다. 서구적인 곡가 한국적인 곡. 한국적인 가곡으로 봉선하, 명태, 산유화, 보리피리 등등을 꼽고 있지만 사실 이런 곡들에서 한국적 색깔을 찾기란 쉽지 않다.


30년대 가곡 형식의 정착기에 활동한 작곡가들을 보면 지금도 애창되고 있는 곡들을 쓴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채동선, 이흥렬, 김세형, 김성태, 조두남, 김동진. 이 중에서 김세형은 영시 '먼길'을 번역해 곡을 붙였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연가곡이 된다. 연가곡이란 일관된 주제를 갖고 쓰여진 시에 곡을 붙인 가곡모음이다.


연가곡이란 용어가 나왔으니 '통절가곡'과 '유절가곡'이란 개념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자. 유절가곡이란 1절, 2절, 3절 하는 식으로 절이 나뉘어 있는 곳이며 통절이란 전체가 하나의 절로 구성된 가곡을 이른다.




채동선의 곡 망향을 들었다. 망향은 다른 제목 '그리워'로 많이 알려져 있다. 원래 정지용의 시였으나 월북하는 바람에 금지곡이 되자 이은상 시로 하여 발표되었는데 그 덕에 널리 애창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채동선은 작곡을 하기에 앞서 시의 선택에 아주 엄격했다고 한다. 주로 자유시를 많이 선택했는데 그 때문에 김동진과 함께 통절가곡의 개척자로 불린다.


"바위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하고 시작하는 가곡 '바위고개'는 이흥렬 곡이다. 조영남이 불러 가요로 착각하는 이도 있지만 엄연한 가곡이다. 다음으로 감상한 곡은 '동심초'다. 역시 권혜경이란 가수가 불러 유명하다. 권혜경이 누군가?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산장의 여인'을 부른 가수다. 그런 그가 성악을? 지금은 음반을 발표할 때 건전가요를 끼워넣기 하지 않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음반을 내려면 꼭 한 곡은 건전한 노래를 넣어야 했다. 권혜경의 음반에 '동심초'가 들어간 것은 그런 이유라고 한다.


1931년에 발표된 '봄이 오면'을 비롯해 뱃노래(1932), 가고파(1933), 파초(1934) 등은 김동진의 곡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악상으로 전개한 서정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이즘 작곡가 중에서 김성태란 인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는 바다, 말, 산너머 저쪽 등의 곡을 썼는데 이러한 가곡이 생소한 것은 대부분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금지곡이 된 탓이다. 그는 특히 가곡에 민요적인 요소를 접목해 한국적 예술가곡의 방향을 모색했다는 측면에서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가곡의 변천사에서 1940년대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30년대 주류를 이루었던 작곡가들이 서정적 분위기의 곡들을 계속 발표함과 동시에 진보적이고 사실주의적인 경향의 가곡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주인공들은 윤이상, 김순남, 이건우, 나운영 등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다음 주 다시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Posted by 무한자연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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