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송헌금추야연 첫공연 정농악회 '명인의 향연'
오랜 만에 가곡전수관 공연을 관람했다. 변기수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장도 함께 했다. 그는 몇 년 전 이곳 단골이었다고 했다. 그땐 서로 잘 몰랐을 테니 아마 마주치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일년에 두세 번 갔을 때가 3년 전쯤이겠다. 경남도청 인터넷신문 '경남이야기'를 맡아 문화관련 취재를 많이 했었는데, 가곡전수관이 단골이었다.
어제는 객석에서 강재현 변호사도 만났다.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데 국악 공연장에서 만나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조순자 관장은 다리를 다친 게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모양이다. 마지막 프로그램에 가곡 여창 부분을 맡았으나 앉을 수가 없어 제자 김참이 가인이 대신했다.
공연을 보면서 팸플릿에 낙서하는 게 취미라... 공연이 끝나고 나니 역시 팸플릿은 여백 없이 필기 글로 채워져버렸다.
지금부터 메모해뒀던 감상글을 베껴 정리.
이렇게 낙서하는 이유는.... 머리가 나빠서. 돌아서면 감상했던 것도 다 잊어버려. 어떤 장면에서 내가 감동을 먹었던가 하는 것도 기억이 안나. 귓불에 주름이 없는 걸 보면, 치매는 아닐 것인데... 머리가 나쁜 게 확실해.
수제천. 정악 중에서도 정악이 수제천이다. 고전문학을 조금이라도 했던 사람이라면 이게 어떤 노래인지 알 것이다. '달하 높히곰 도다샤 님의 머리를 비춰오시라...' 그래, 정읍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연주를 들으면서 그 장면을 떠올려도 좋겠다. 정악은 집박으로 시작하고 집박으로 끝난다. 판사가 재판을 시작할 때 망치로 세 번을 땅땅땅 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삼이라는 숫자는 세상의 이치를 담은 대표적 숫자이므로.
정농악회 정재국 회장이 박을 세 번 딱딱딱 치면 연주가 시작된다. 한참을 보다가 맨 앞에 앉은 아쟁을 유심히 봤다. 대부분 현악기들이 손으로 퉁기거나 활을 사용해 소리를 내는데, 이 아쟁은 활이 아닌 나무작대기를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활도 쓰고 막대기도 쓴단다. 예전에 7현금이 아쟁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줄을 세어볼 걸 그랬나. 아쟁은 7~10개의 현을 이루고 있단다.
수제천을 들으며 역시 피리는 강하다는 걸 느꼈다. 소리가 많이 튄다. 합주에서 피리의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내어 매력이긴 한데 다른 악기를 짓눌러버리는 느낌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다. 그것도 이번 공연엔 셋이나 편성되었으니...
박 연주는, 연주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서 있어야 한다. 거의 움직임도 없다. 그래서 공연을 보면서 집박 정재국 선생은 정말 심심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소병주. 생황과 단소 이중연주란 말이다. 처음에 단소를 보면서 피리와 어떻게 구분할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소리를 들어보니 피리와는 확연히 다르고 생김새도 부는 방향만 같다 뿐이지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단소의 소리는 피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곱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플루트와 비슷한 느낌?
그리고 생황은 스코틀랜드의 백파이브를 연상케하는 소리를 지녔다. 부는 형식이 비슷해서 그러나 싶을 정도다. 소리가 진하고 날카롭다. 생긴 건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모습만 보고 '엘 콘도르파사'를 연주하는 팬플루트를 연상했다면 내가 지나친 것이었을까.
생황과 단소의 화음이 물에서 노니는 용을 연상하기엔 내가 선입견으로 지니고 있는 용에 대한 상상이 너무 강해서였을까, 두 악기로는 내 상상의 용을 부추기지는 못했다.
세악합주 천년만세. 국악의 대부분은 박자를 한가지로 고집하지 않는다. 일테면 변주곡이다. 민요도 그렇고 정악도 마찬가지 인데, 이러한 점이 국악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정확하게 국악의 가락을 잘 모르긴 한데 느낌상, 세마치로 걷다가 자진모리로 뛰다가 다시 세마치로 마무리하는 연주였던 것 같다. 국악의 장단을 좀 더 공부해야겠지.
양금이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 구도는 고정된 것 같은데, 10여 년 전 몽골에서 몽골전통음악을 봤을 때에도 이 양금과 비슷한 악기가 가운데 주인공처럼 배치된 것을 본 기억이 있어서 왜 그럴까 호기심이 일었다. 언제 국악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대금독주로 '청성곡'이 연주되었는데, 정말 최고의 찬탄을 보낼 정도의 연주였다. 대금만큼 폭넓은 음색을 내는 악기가 없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채조병 선생의 경지를 가늠할 수 있는 연주이기도 했다. 유튜브를 통해 대금 연주를 몇 번 들어보긴 했는데, 직접 공연장에서 '통수구녕'으로 흘러나오는 소리를 직접 들으니 감동이 절로 일었다. 해금을 배워보고자 했는데... 대금으로 바꿔볼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별곡 '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타령'. 별곡이라 함은 영산회상불보살(산영산)에서 파생된 곡이라고 한다. 9개 모음곡 중에서 타령을 추려 연주하는 게 별곡이란다. 8명의 연주자가 각각 다른 악기로 화음을 이루었다. 역시 피리는 혼자라도 존재감이 확실했으며 가야금이 조금 드러나지 못했다. 공연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눈길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 있다. 양금 연주자인 이지영 선생의 손끝이다. 띵띵 두드리는 모습이 한가한 듯하면서도 순발력 있게 움직이는 것이 매력적이다.
궁금한 게 생겼다. 정악 합주에 8악기로 구성한 이유가 있을까? 그냥 정농악회의 스타일인 걸까. 클래식에서 오케스트라 구성을 지휘자 성향에 맞춰 하는 것과 유사한 걸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 또 어떤 악기로 몇 개의 합주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와 화음을 이룰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계속 듣다 보면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정재국 회장의 피리독주 '상령산' 상령산은 영산회상 중 일부라고 한다. 역시 피리의 소리는 압권이다. 너무 강렬해서 일흔이 넘었다는 정 회장의 나이를 잊을 정도다. 피리소리를 듣다가 엉뚱하게도 이 소리가 색소폰 소리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눈을 감고 색소폰이다 생각하니 영락없이 색소폰인 것이다. 물론 착각이 50% 이상 개입된 것이겠지만. 오랜 세월 피리 연주로 최고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다 싶은 연주실력이다. 높은 음과 낮은 음이 오버랩되면서 곡의 매력이 드러났다.
조순자 관장 대신에 김참이 가인이 박문규 선생과 소리의 균형을 맞췄다. 김 가인의 입장에서는 영광이겠다. 하늘 같은 선배와 나란히 창을 했으니 말이다.
머지 않아 김참이 가인도 명인 반열에 들 것이라는 확신을 해본다. 창을 하면서 박문규 선생의 소리에 맞추려고 애쓰는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그럼에도 무난히 소화했던 것 같다. 자기 소리를 잘 다듬고 음색의 깊이를 가미한다면 금상첨화겠다 싶다.
객석을 꽉 채웠으면 싶었지만 아직도 국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젊은 층일수록 케이팝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방송의 영향이 크다. 자극적이고 현란한 데서 만족하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분위기는 언론이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 없다. 때론 느리고 차분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어쩌면 우리 사는 세상을 좀 더 예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착한 세상은 이러한 작은 변화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했으면 한다.
기쁜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섰던 연주였다.
'돌이끼의 문화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극단 장자번덕 '사천 愛 연극' - 비로소 가득하다 滿-2 (0) | 2018.09.11 |
---|---|
오페라와 연극의 만남 '라 트라비아타' 밀양 공연 (0) | 2018.09.08 |
가곡전수관 영송헌에서 펼치는 금빛 가을밤의 향연 (0) | 2018.08.23 |
뺑파전에 명창 박애리 공연 한 번에 볼 수 있다, 없다? (0) | 2018.08.09 |
검정고무신 신었던 세대에겐 추억되겠다 (0) | 2018.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