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를 여자로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한 동반자로 사랑하는 걸까
하도 젠더 젠더 해사서 그 성에 대해 고민해봤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글을 쓰면서 '그녀'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적어도 경남도민일보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1999년 5월 이후엔. 그 사람을 지칭하면서 굳이 남자니 여자니 하는 성별을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고 '그'에 대칭하는 '그녀'라는 단어가 불평등의 상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이 문제가 한 번 논의된 적이 있다. 해서 지금도 많은 기자들이 그과 그녀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그라고 표기한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철학의 문제이지 통일성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내 생각이다.
동성애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하다. 따지고 보면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는 별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홍준표가 초등학교 여학생 둘이 손잡고 가는 것을 쌍심지켜고 동성애 어쩌고 할 것도 아니고 여대생, 남대생 제각기 손잡고 다닌다고 쌍심지 켤 일도 아니잖은가. 어린 남학생 둘이서 아니면 여학생 둘이서 손잡고 다니는 걸 시비 걸 인간은 없겠지.
문재인이 얼떨결에 동성애 질문에 황당한 답변을 하긴 했지만 차별금지라는 정리에 다행이다 싶다. 동성애라는 것은 성을 '섹스', 즉 물리적 성, 생물학적 성을 두고 이르는 표현이다. 호주 퀸즐랜드 공대의 설문처럼 성이라는 것이 남자, 여자 이렇게 딱 두가지로 딱부러지듯 나뉘는 게 아니잖은가. 그러면 트랜스젠더는 왜 생기는가. 태어나면서 정해진 물리적 성이 자신의 정체성에 맞지 않으면? 그를 정신병자라고 할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같은 이치로 하늘이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을 정해놓은 것이라며 당당해하는 마초이즘으로 가득 찬 어떤 이는 정상인가? 남자의 역할 여자의 역할, 누가 정해줬다고? 역할은 삶 속에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정해져 가는 것일 따름이다. 혼자 자취하는 남자는 스스로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그렇게 환경이 주어진 것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할머니의 부엌일이 재미있었다. 할머니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불알이 떨어진다"며 만류했지만 음식을 할머니보다, 어머니보다 더 맛있게 할 요령이 떠올랐기 때문에 부엌 출입을 그만두지 않았더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아내는 내가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홍준표 시각으로 나는 여자인가?
어쩌면 내 속에 여성이 있긴 있을 것이다. 그 여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가정적이고 감성적이고 헌신적이고 평화적인 것에 둔다면. 그렇겠다. 나는 남자지만 여성일 가능성이 많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을 내세우기 좋아하지 않고, 조금 성과 이뤘다고 자랑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남에게 비아냥거리지 않으니 나는 어떤 이가 은근히 자랑하는 그 남성적인 면과는 거리가 머니 말이다.
젠더의 근간은 나누지 않는 데에 있다. 남자냐 여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 생물학적 성, 섹스에 의한 현상, 즉 결합을 하고 출산을 하고 모유수유를 하는 딱 그 과정 말고는 모든 것을 젠더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비문명적 인간, 인간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존재라면 그리 살아도 된다. 바바리맨을 하든 뭘 하든. 자랑하고 드러내고 그리 살아도. 적어도 난 아무 참견 안할란다.
이런 내 생각도 소수의 관점임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소수의 인식이지만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