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끼의 작은생각

한국사회에서 쫓겨가는 이주여성을 보면서

무한자연돌이끼 2011. 12. 5. 13:38

 한국이란 사회, 어쩌면 너무 딱딱하게 법적인 것을 내세우다 보니 따뜻하게 보듬어도 될 것들을 놓치는 사례가 많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해봅니다.

어제 우리 식구는 지난 6년 동안 알고 지내던 몽골여성과 이별파티를 열었습니다. 나와 아내, 큰 딸, 아들, 막내딸, 그리고 이날 함께 있던 오가나 이모까지 식탁에 둘러앉아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 한 장에 각자 글씨로 이별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막내는 뒷장에다 크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모의 얼굴을 예쁘게 그리고 사인까지 해서 고급 봉투에 넣어 주었습니다.

예전에 쓴 글이 있어서 본명 대신에 그때의 이름으로 하겠습니다. '솔롱고'. 참 솔롱고는 '무지개'란 뜻인데 빨주노초파남보, 다문화사회를 상징하는 이름이지요.

솔롱고는 결혼이민여성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온지 6년만에 다시 몽골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을까요? 무엇을 잘못했기에 쫓겨가듯 강제 출국을 당해야 했을까요?

솔롱고는 2005년 말 한국으로 시집온 몽골여성입니다. 몽골에선 공업대학을 나왔지요. 고급인력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면 그 전문성을 살릴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단지 한국인 남자의 아내로서 그 역할을 강요당할(?) 뿐이었지요.

솔롱고는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었던 거지요. 시집온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공장에 나가 일을 하게 된 것이 불행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월급 받은 것을 고향에 있는 어머니께 생활비를 보낸 것이 시어머니나 시누이의 눈에 난 것 때문에 갈등이 시작되었고 한국어를 전혀 모르던 상황에서, 또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한순간 얼떨결에, 혹은 판단을 잘못하여 서명해버린 합의이혼서.

스물 세살 젊은 나이에 머나먼 한국땅에 시집오자마자 결혼에 실패, 하지만 빈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자식이 이혼한 줄도 모르는 부모 앞에 이혼녀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체류연장을 하면서 한국에 머물러야 했던 사정들.

하필이면 위자료 청구소송을 했던 때마저 소멸기한인 3년을 일주일 넘기고 제기하는 바람에 아무 소용없었던 무지.

결국 정해진 세월은 그를 다시 몽골로 돌려보내버리네요. 국제결혼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점점 커가고 있는 몽골에서 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국에서 살고싶었지만 이혼녀라는 딱지는 그를 일도 못하게 했으니 어쩌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6년의 세월은 그저 그에게 오랏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입에 풀칠이나 할 수밖에 없는 세월을 한국에서 보낸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돌아갈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솔롱고는 지난 6년간 길잃은 철새였습니다.

[데스크칼럼]솔롱고의 항소이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