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끼의 문화읽기

이상용 대표의 <창동야화>1편에 실린 대동제 이야기

무한자연돌이끼 2026. 2. 24. 18:54

극단 마산 이상용 대표는 연극에도 진심이지만 마산의 문화를 기록하는 일에도 진심인 인물이다.

지금 한창 마산 대동제가 진행 중인데, 오는 28일엔 마산문화센터 시민극장에서 국악, 무용, 음악, 시낭송을 무대에 올리는 '예술의 향연 및 시민과 힘께하는 어울마당'이 펼쳐진다.

 

대동제 시기에 맞춰 10여 년 전에 발간된 이상용 대표의 <창동야화>를 읽다가 '대동제'에 얽힌 이야기가 있어 추려서 정리한다.

 

190쪽에 '대동제'여 영원하라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첫 문장이 이 대동제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전국의 많은 예술행사 중에서도 유독 우리 마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행사가 하나 있으니 '대동제'가 바로 그것이다. 음력 정월초나흘부터 보름까지, 마산 예인들이 각자 소장하고 있는 그림이나 시화 한쩜씩을 '고모령'이란 주점에 걸어놓고 원로 예술인들을 초청해서 세배도 드리고 조촐한 술판도 곁들이는 일종의 새해 정초 세배 세리머니가 바로 초창기 대동제인 것이다."

 

'대동제' 단어가 품은 의미는 뭔가 크게 뭔가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초창기 대동제는 '크다'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행사였다.

 

"초창기의 '대동제'는 너무도 소박하고 조촐한 예인들의 잔치였다. 특히나 대동제가 조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겨우 탁자 너댓 개를 갖춘 작은 주점 고모령에서 처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좁은 공간에서 열린 대동제가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이니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게.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상용 대표는 고모령의 여주인 문 여사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과연 고모령 여주인은 어떤 배포를 가진 사람일까. 혹시 강호 무림의 고수는 아닐까. 선술집 주모라면 악착같이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모으는 것이 일반적인 삶의 방식임에도 그녀는 돈을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남에게 베푸는 것은 기본이요, 돈 안 되는 대동제 같은 행사를 주선하는 데 남보다 먼저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동제 역사의 시작이 고모령이라는 얘기다.

 

"대동제 때문에 고모령이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탔기에 하는 말이다. 환언하면 고모령 여주인 문자은이 없었다면 대동제는 탄생하지도 못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전국의 예인들이 마산 고모령을 찾았는데, 그 인물 면면을 언급했다.

 

"통영의 임종안(서각가), 진주의 설창수(시인), 서울의 김재규(마산출신 화가), 진해의 유택열(화가), 부산의 변창헌(서예가) 등등이 그 대표적인 면면들이다."

 

이상용 대표가 밝히는 대동제 탄생비화는 흥미롭다.

 

"1987년 연말에 마산 예인 몇몇이 고모령에 집결한다. 다가오는 음력설에 어른들을 고모령에 모셔놓고 합동으로 세배 드리는 문제는 의논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어른들을 모셔 놓고 단순히 세배만 하는 것은 무미건조하니 화가들은 각자 1호 크기 정도의 소품을 한 점씩 가지고 와서 고모령에 걸어놓고 세배를 하면 좀 운치가 있지 않을까를 의논한다. 그리고는 우리가 마산을 예향답게 만들자며 의기투합도 한다."

 

어떤 인물이 모여 작당했을까.

 

"고모령 여주인 문자은과 미술인 변상봉 허청륭 윤종학 현재호 박춘성 박장근 김병규 성낙우, 시인 김미윤, 서예가 김미호 윤환수 등이 그 주축멤버였고 언론인 이순항, 화가 최운 김영진 정상돌 김대환 권영호, 시인 황선하 이광석 등등은 당시 그들의 멘토였다." 

 

물론 이상용 대표도 그 일원인 것은 당연하다.

 

 

잘나가던 대동제에 수난사도 있었다.

 

"당시에 그 방송을 본 전두환 대통령이 마산의 대동제가 무슨 반정부 단체의 행사가 아닌가 하고 진상파악을 지시하자 청와대에서는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그 불똥이 경남도와 마산시에까지 튀었음은 불문가지. 당시의 도지사와 마산시장이 고모령에 온 것까지는 좋았으나, 행사장인 고모령은 열악한 시설의 무허가 술집이었으니..."

 

그래서 어찌 되었을까?

 

"바로 그 다음날 당장 영업정지와 함께 70여만 원의 벌금이라는 날벼락을 맞았단다. 그래서 급기야 화가들이 나서서 벌금을 모으기 위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단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대동제 글씨체는 누구의 것일까?

 

서양화가 허청륭인데, 한때 이 글씨체를 두고 '땡초체'로 통하기도 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