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웜홀

경남도민일보 창간호에 실린 이선관 시인의 축시

무한자연돌이끼 2019. 1. 30. 11:26

1999년 5월 11일 화요일. 경남도민일보 창간호가 발행됐다. 1998년 외환 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연쇄부도를 맞을 때 동성종합건설의 손에 있던 경남매일 역시 부도를 피하지 못하고 그해 10월 31일 3000호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1988년 남도일보로 시작한 10년의 수명을 다했다.


그후 6개월 여 동안 옛경남매일 구성원 중에서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형태의 신문 만들기에 동조한 30명이 동분서주하며 준비했던 신문이 경남도민일보다. 시작할 때 신문의 이름을 내부 공모하기도 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해오름도 있었던 것 같고.. 어디 기록이 있을 텐데... 다양한 이름이 나왔다. 그중에서 신문의 성격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이름이 '경남도민일보'라고 공감을 많이 했다. 나도 이 이름을 지지했구.


경남도민일보가 처음으로 살림을 차린 곳이 마산역 앞 당시 삼성AS 지하와 3층이었다. 지하는 경영국이었고 3층은 편집국이었다. 도시락을 싸서 옥상에서 종종 먹었더랬다. 이 건물은 지금 동도센트리움으로 바뀌었다. 맞은편 양덕성당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있다. 양덕성당은 오랜 세월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내서 윤전공장에서 첫 신문이 인쇄되어 나올 때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아직 그 기억이 생생하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자료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창간호 파일을 봤다. 그땐 몰랐는데 이선관 시인이 축시를 썼다. 경남매일, 내가 문화부 기자일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썩 친하게 지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희한하게도 책사랑에서 만나거나 선생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문안 가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파일을 넘기다가 시인의 글에 잠시멈춤했다.


<축시> 


오늘 태어난 도민신문은 투박한 질그릇이어야 하느니

이선관


그래 그래서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한 그대들은

마치 산모의 진통을 참아내는 양

기다림에서 보람으로 마침내 태어났으니

이름은 도민일보

바다 건너에서 수입한 대리석으로 만든 화려한 그릇이 아니라

이 고장에서 나는 흙으로 빚은 투박한

질그릇이어야 하느니

지나간 날날 허무한 날날

중앙지나 지방지나

힘있는 자들 가진 자들에 대변인인 양

경제대국이니

일등국가니 일등정부니 일등국민이니

초일류신문이니 하면서 우습게도

아이엠에프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도 며칠 전에는 한사나흘

나라를 온통 흔들어 놓은 도적은

도적일 뿐

한심한 건 고백이건 자백이건

횡설수설이듯

한갓 도적을 양심선언자라고

우리를 기만하지 않았던가

각설하고

그리하여 오늘 태어나게 한 그대들은

언론의 본질은 사회의 공기며

지역언론은 그 지역의 공기이기에

도민의 슬픔과 기쁨을 그려내야 하며

공론화해야 할 사명을 잃어서는 

안되느니

정보화시대가 오는 이십일세기를

조심스럽게 맞아히면서

도민의 빠짐없는 식탁마다

이 고장 내음이 불씬 풍기는 투박한

질그릇을

놓아드리며 넉넉한 양식으로 채우리니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 하는 말씀과 같이

도민과 함께 도민일보여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하라

이어지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