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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웜홀/옛날에 무슨 일이?'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8/12 남부군 최진실을 찾아서... by 돌이끼 (2)
  2. 2008/08/12 18년 전 안성기,박상민,최민수,최진실의 모습은? by 돌이끼 (1)
  3. 2008/05/02 [그땐 그랬지]노래방 심야영업 團束, 이용자도 처벌 by 돌이끼
  4. 2008/04/09 4년전 총선 때 기표소 점령한 할머니 에피소드 by 돌이끼
  5. 2008/03/28 무정부계 청년들, 속속 검거되다 by 돌이끼 (3)

남부군 최진실을 찾아서...

미디어 웜홀/옛날에 무슨 일이? 2008/08/1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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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이태와 민자. 이후에 헤어진다. 2.민자 간호에 고마워하는 이태. 3.부상당한 이태를 걱정하는 민자. 4.민자가 이태를 다시 만났을 때의 모습. 위에서부터 사진설명을 달았지만 시간 상 순서는 뒤섞여 있음을 양해바랍니다.



전에 썼던 글 '18년 전 안성기 박상민 최진실의 모습은?'의 댓글에서 김주완 부장이 최진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서 (오프라인에선) '혹시 낚시 아니냐?'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건내기도 했습니다. 영화 포스터에 '최진실'이란 이름이 올라 베껴 쓴 것 뿐인데 이런 의혹(?)에 시달리다보니 증거를 찾기 위해 깨나 고생했습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못 찾고 어제는 집으로 가는 길 '가리온 시네마'라는 비디오방에까지 테이프를 빌리러 갔더랬습니다. 그곳, 책은 많은데 비디오 테이프는 별로 없더군요. 아마 비디오 테이프가 있던 자리에 DVD와 만화, 무협지로 채워진 듯합니다. 참, 거기서도 없었습니다.

오늘 낮에 편안한 마음으로 각종 포털사이트를 검색하기도 하고... 하다가 발견했습니다. '한국영화 데이타베이스'라고...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영화에 관련된 정보라면 이런 전문 누리집이 있을 거라는 거... 짐작이라도 할 만한데... 나이 사십 중반을 넘기면서 모든 '총기'는 안주삼아 다 마셔버린 듯 합니다.

어쨌거나 내가 쓴 글에서 받은 의혹을 풀 증거를 발견했으니 당근, 올려야죠. 그런데 그 사이트에 있는 자료가 캡처불가네요. 허 이런... 하는 수 없이 비장의 무기를 꺼냈습니다. 요즘 김주완 부장이 부쩍 탐내는 준 전문가용 일안렌즈 디지털 카메라, LCD모니터를 통해 찍었는데 사진 중에 파장이 드러나는 것은 ISO400을 놓은 것이고 조금 깔끔해보이는 것은 ISO200을 놓고 찍은 것입니다.

남부군에서 최진실은 이태(안성기)를 돌보는 간호장교 박민자 역으로 나옵니다.

남부군은 최진실의 영화 데뷔작이라고 합니다. 화면이 흐릿해 쉬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만 지금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내 생애 마지막 로맨스'의 최진실 모습과는 사뭇 다른, 애띤 모습은 확인 가능하군요.

2008/04/03 - [미디어 웜홀/옛날에 무슨 일이?] - 18년 전 안성기,박상민,최민수,최진실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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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주완 2008/04/08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맙습니다. 고생하셨네요.
    저 때만 해도 최진실이 참 풋풋하네요.

  2. 박찬종 2008/10/02 0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비보를 접하고, 이곳까지 와보네요. 고등학교때 대한극장에서 남부군을 보고, 고 최진실 님의 잔상이 몇주동안 아른거렸는데, 결국 이렇게 마무리되고 말았군요. 위 사진 제 블로그에 담아가봅니다(삭제 요청시 내리겠습니다).

18년 전 안성기,박상민,최민수,최진실의 모습은?

미디어 웜홀/옛날에 무슨 일이? 2008/08/1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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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6월 마산지역에서 발행하던 신문에 난 영화포스트를 모았다. 낯익은 얼굴들... 유명 배우들의 햇병아리 시절 모습을 보니 '세월유수'.

남부군, 죽는자를 위한 기도, 끌로드 부인, 죽은 시인의 사회, 마유미, 장군의 아들, 남자시장, 묘탐쌍웅, 쫄병수첩2, 재전강호, 여전사... 흠, 이중에서 아직도 기억에 있는 영화는 남부군, 죽은시인의 사회, 장군의 아들.. 쫄병수첩은 포스터를 보니 아 이런 영화도 있었지 싶고 다른 영화는 금시초문이다. 마유미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던졌지만 영화로 만들어졌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남부군의 주인공은 안성기다. 아마도 러닝타임이 2시간을 넘었지 싶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빨치산과 토벌군의 긴박한 전쟁과 배고픔과 극한 상황 속에서 버티어나가는 빨치산들의 심리를 잘 다루었던 것 같다. 어느 극장에서 봤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강한 인상을 받았던 영화임에 틀림없다. 주인공 안성기의 연기도 연기지만 아마 이때 데뷔하지 않았나 싶은데 임창정의 짧은 연기도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어린 빨치산이었지 싶다. 포스트를 보니 이혜영, 최진실, 최민수, 트위스트김, 독고영재, 강태기, 조형기 등 제법 알려진 사람들이 있는데 기억 속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으니... 다시 한 번 비디오라도 빌려서 봐야겠다. 부림동 연흥극장에서 한다는 포스터다. 포스터에 보니 연흥극장을 '마산에 문화의 공간 탄생'이라고 적혀있는데 아마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일 것 같다.
 
두번째 포스터에 있는 영화는 '죽는자를 위한 기도'인데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영화뿐만 아니라 은하극장이라는 게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마산역 앞 현대자동차 맞은편이라고 장소 안내가 되어 있는데 이 장소라면 지금 하이마트가 있는 곳? 포스터에 나타난 약도를 보니 생각난다. 옛날 국일관 있던 자리다. 지금은 별 볼일없는 건물로 이 시기에 개업한 모양이다. 은하극장의 김구태라는 사람이, 아마 대표이지 싶은데 인사말씀을 신문광고로 냈다.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근계시하(槿啓時下) 초하지절(初夏之節)에 존체금안(尊體錦安)하심을 앙축(仰祝)하나이다. (이후 한자 생략... 변환하려니 너무 귀찮아서리...) 평소 여러분의 후원에 힘입어 시내 동곡극장을 경영해 본 경험을 바타응로 미약하나마 지방문화 편달에 창달에 일조를 하겠다는 신념으로 이번에 다시 은하극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공사다망하신 중에라도 개업식에 자리하시어 많은 격려와 지도편달 있으시길 바랍니다. 1990년 6월.
 
그리고 그 옆의 영화는 끌로드 부인이다. 마산 창동 불종거리에 있는 명보극장과 합성동 시외버스주차장 앞에 있는 동보극장에서 동시에 상영했다. 내 기억에 이 두 극장은 항상 같은 영화를 상영했던 것으로 남아있다. 이런 짝짝이 극장들이 몇 개 있었는데 확실하게 기억나는 곳이 퍼떡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죽은시인의 사회'. 유명한 영화다. 아직도 TV나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명작이다. 16일 개봉이라고 나와있는데 3.15회관에서 했구나. 이 당시만 하더라도 3.15회관은 참 잘나갔다. 수시로 영화도 오르고. 회관 앞에 주차도 할 수 있어서 차 가지고 온 사람에겐 다른 극장보다 편리했지 싶다. 극장 간판도 다른 극장에 비해 컸던 것 같다. 이 당시 건물 규모가 비교적 컸던 극장은 3.15회관을 비롯해 시민극장, 중앙극장, 강남극장 쯤이지 싶다.
 
'마유미', 시민극장에서 했구나. 월북인지 납북인지 어쨌든 북에 갔다가 한동안 예술활동을 하다 유럽 어디선가에서 한국대사관으로 탈출한 신상옥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김현희라는 여인이 칼 항공기를 공중폭파시켜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사건을 소재로 은근히 북조선의 만행(?)을 고발한 작품이다. 북에서 갓 탈출한 영화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순수성에 의심이 가기도 하고 묘한 늬앙스가 풍겨지기도 한다.
 
그 다음 포스터는 '장군의 아들'이다. 박상민을 일약 스타로 만든 영화다. 거장이라는 임권택 감독이 만든 만큼 인지도도 높았던 것 같다. 그런데 박상민의 애띤 모습이 정치깡패 김두한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어서 현실성은 좀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강남극장에서 했다. 부림시장 바로 위에 있었던 강남극장, 90년대 중반 영화관글이 줄줄이 문을 닫을 때 그래도 내부수리까지 하며 버텼었더랬는데 결국 멀티플렉스라는 복합영화관의 대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으니 마산 영화 역사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 셈이겠다.
 
그 다음 포스터는 '남자시장'? 이런 영화도 있었나? 최민수가 주연으로 되어 있는데 극중에서 아마 '제비' 역할을 맡은 모양이다. "사모님, 제비 한 마리 키우시죠?" 동아극장에서 상영했네. 강남극장, 마산시외버스터미널 옆의 태화극장과 함께 주인이 같다. 동아극장은 어시장 앞 사거리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임청하(린칭샤) 이연걸 주연의 '동방불패'를 연달아 세 번을 내리본 기억이 있다.
 
그 다음 피카디리와 제네바극장에서 묘탐쌍웅을 했고, 피카디리는 처음에 피카다리인 줄 착각해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중앙극장에서 한 쫄병수첩2. 당시 TV에서는 쓰리랑 부부의 김한국과 메기병장 이상운이 나왔던 '동작그만'이라는 코미디 프로가 인기절정이었다. 쫄병수첩에 메기병장 이상운이 나오는 것을 보니 동작그만이라는 프로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재전강호를 상영했던 동곡극장과 경동극장, 여전사를 상영한 코이라극장과 스카라극장. 이들 극장은 객석 200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 소규모 극장이었다. 이외에 창원에는 정우극장이 있었으며 39사 맞은 편에 이본동시 상영을 주로 하던 한성극장이 있었다. 이들 극장 중에 지금 남아 있는 곳이 하나도 없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2008/04/08 - [미디어 웜홀/옛날에 무슨 일이?] - 남부군 최진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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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주완 2008/04/03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진실은 어디 있나요?

[그땐 그랬지]노래방 심야영업 團束, 이용자도 처벌

미디어 웜홀/옛날에 무슨 일이? 2008/05/0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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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5월 29일 목요일 경남매일 기사
노래방 심야영업 團束
6월부터 이용자도 경범죄 처벌 검토

정부는 29일 오전 총리실주관으로 '새질서 새생활 실천'관계부처 실무대책협의회를 열고 최근 전국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노래연습장과 유흥업소의 심야영업행위, 소극장 안전문제, 오토바이폭주족 등에 대한 대책 등을 마련한다.

총리실 이충길 제4행정조정관 주재로 내무 법무 보사 문화부와 경찰청 등 관계부처 국장급들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는 지난 2일 현재 전국적으로 2133개에 달한 노래연습장의 무분별한 심야영업행위 등을 막기 위해 풍속영업규제에 관한 법률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개정, 6월부터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에따라 노래연습장의 주인은 개점에 앞서 관할 경찰서장에 신고해야 하고 심야영업과 18세 미만 청소년의 입장이 금지되며 상업지역 내 위치하지 않은 업소는 6개월의 경과기간 안에 의무적으로 시설을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또 지난해 10·13 범죄와의 전쟁선포 이후 단속을 피해 심야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일부 유흥업소를 대상으로 단속을 강화하고 업주 외에 심야유흥업소 이용자도 경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와함께 소방안전시설이 미흡해 화재 등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인명 피해의 가능성이 높은 소극장에 대해서는 소방법시행령을 개정해 옥내소화전 화재발생탐지기 등의 시설을 갖추도록 할 방침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소극장에서 성인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연령별로 심의등급을 세분화하고 극장연합회를 통해 자율적인 지도를 강화할 예정이다.
 
노래방을 밤 12시 넘어 영업을 하면 단속하는 시절이 있었다. 1992년 5월 기사에 이런 내용의 예고기사가 있는 걸 보니 내가 단속을 피해 노래방에 들렀던 때는 이보다 한참 뒤인 듯 하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하나. 아마 마산종합운동장 부근이었지 싶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돈은 없고 시간만 많았던 친구(젊은 나이에 머리 숯을 많이 잃어버린)가 술 한 잔 한 김에 노래방 가자고 바득바득 우기는 통에 끌려간 곳이었다.

노래방 앞에 당도하니 12시가 넘은 시각, 셔터는 내려져 있고 불도 다 꺼졌는데 무슨 노래를 부른다는 말이냐며 돌아서려 하자 문이 스르르 열린다. 빨리 들어오라고.

그 노래방은 친구의 단골이다. 돈도 없는 놈이 이런 곳엔 단골도 많아요.

노래방은 지금처럼 방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홀 한쪽으로 둥그렇게 테이블이 놓여있는데 가운데 노래 선곡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있었다. 책을 보고 번호를 불러주면 그 여성이 숫자를 누른다. 노래를 부르다가 박자나 음정이 틀린다 싶으면 도우미가 함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래서 노래기기에서 나온 두 개의 마이크 중에서 하나는 꼭 그 도우미가 쥐고 있었다.

당시 이런 노래방을 일본식 이름 그대로 '가라오케'라고 불렀는데 술도 팔았다. 이 가라오케가 이후 노래방과 노래주점 등으로 나뉘어 영업을 하게 됐다. 참 오래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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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총선 때 기표소 점령한 할머니 에피소드

미디어 웜홀/옛날에 무슨 일이? 2008/04/0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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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올해엔 할머니께서 투표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치매가 더욱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께선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무조건 투표'였는데 말입니다. 내가 찍은 그 후보는 아깝게도 한 표를 잃었습니다. 그이가 낙선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기표소를 점령한 할머니.

아침식사를 마친 9시. 우리가족은 고민에 빠졌다. 85세인 할머니를 모시고 투표소에 가야하나, 아니면 그냥 집에 계시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였다.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난 지방선거 때 투표용지가 무려 4개가 되자 혼란에 빠진 할머니가 기표소에서 무려 20분이나 서있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 할머니는 투표장에 가기 전에 누군가를 찍으려고 마음 결정을 이미 내렸는데 막상 기표소 안에 들어가서 붓두껍으로 찍자니 뭐가 뭔지 헛갈렸던 것이다.

“종이가 머그리 많더노? 찍을라 카는 그 사람은 이름도 안 보이데.” 시력도 좋지 않은 데다 가끔 치매 초기 증상도 보여 왔던 터라 ‘실전’에 대한 두려움이 겹쳐서인지 쉽게 찍지 못했다. 벌써 투표를 하고 출구에 서있던 우리 가족은 선관위 눈치도 있고 해서 할머니가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다그치고 할머니는 다급한 마음에 “누구 찍어야 되노? 표가 많아서 못 찍겠다”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아무도 찍지 못하고 무효투표를 하고 만 것이다. 20분이나 기표소를 점령한 덕분에(?) 많은 사람을 난처하게 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에는 집에 계시는 게 어떨까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인자는 두 개만 찍으면 된다모? 가자”며 자신 있어 하여 모시고 가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기표소에서 15분을 또 ‘점령’하고 말았다. 그나마 선관위 관계자가 참관인이 보는 가운데 차근차근 설명을 했기에 무효표는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시는 할머니 말씀에 우리가족은 또 ‘아이고 가슴이야’할 수밖에 없었다.“파란 거는 우(위)에서 ○번째 그거 찍었고, 하얀 거는 찍어라 카는 그 번호가 안보이서 두 번째 꺼 안 찍었나.” 연두색 투표용지엔 ○○번을 찍는데 아래에서 ○번째 있고 흰색 투표용지엔 위에서 ○번째를 찍으라고 했던 것을 헛갈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후보를 찍는 흰색용지의 두 번째는 출마자가 없어 가위표가 있는 곳인데 거기다 찍었으니 하나는 또 무효표가 된 셈이다. 어머니는 “다음부터는 마 투표하지 마이소”하고 할머니를 나무랐고 아버지는 “그래도 할머니 덕분에 오늘 웃는다”며 웃음을 보였다.

이날로 두 번째 ‘기표소 곤욕’을 치른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자 투표고 뭐고 아무것도 몬 하것다”하고는 거실에 주저앉았다. 3년 후 다시올 지방선거엔 또 투표용지 서너장을 함께 찍어야 하는데 오늘 사태의 재연을 막을 방법이 없을 것 같다. 투표소까지 따라다니며 증조할머니의 모습을 쭉 지켜본 아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내가 투표하면 진짜 잘 할 것 같은데.” “빨리 커서 나도 투표해봤으면 좋겠다.” 선거축젯날, 온 가족의 투표소 나들이에서 ‘세월’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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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계 청년들, 속속 검거되다

미디어 웜홀/옛날에 무슨 일이? 2008/03/28 13:38
1929년 3월 12일 중외일보는 마산의 아나키스트들이 경찰에 검거된 사실을 보도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잡혔는데 '사건 내용은 아직 모른다'고 보도하고 있다. 경찰의 행실에 은근히 불만을 표출한 표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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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경찰서 고등계에서는 어떤 사건의 단서를 얻었음인지, 지난 8일부터 대 활동을 개시하더니, 지난 9일에 이르러서는 마산청년 정명복(鄭命福), 김형윤(金亨潤) 2명과 거제 청년으로 마침 마산에 볼 일이 있어서, 당지 두월여관에서 투숙하고 있던 권오진(權五璡)을 인치한 수 사법계와 협력하여 엄중 취조하는 한편으로 창원방면으로 부터 손조동(孫助同)이라는 청년을 인치하고, 역시 엄중 취조를 하는 중이라는데,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탐.규문 한 바에 의하면, 무정부주의 사상을 가진 이석규(李錫圭)란 청년이 지난 2월 경에 중국 상해로부터 마산에 왔다가 우연한 기회에 전기 청년들과 만나 상해 방면 이야기를 한바 있었는데, 전기 청년 중 전명복이가 이 사실을 어떤 친구에게 편지한 것이 발각되어, 혹 그 회합 이면에 비밀결사나 있지 아니한가 하여 전기와 같이 인치 취조하는 듯하다는 바, 전기 청년들로 당국으로부터 늘 주의 인물로 지목되는 인물들이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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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발선생 2008/03/28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윤의 별명이 목발(目拔)이라고... 일본 경찰의 눈을 찔렀다고 해서 생긴 호.

  2. 정현수 2008/04/03 1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문이겠죠. 말의 차이는 없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구전'이거나. 실제 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그런 연유로, 스스로 붙였거나 누가 지어주었거나... 당대 이후 지금까지 '목발'이라는 별명이 통한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