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8일 오전 10시부터 창원실내체육관에서는 '2010 다문화가정 어울림 생활축제'가 열렸다. 우린 11시부터인줄 알고 늦게야 도착했다. 아마도 도지사, 창원시장, 도생활체육협회장들의 말씀이 끝난 시점이었지 싶다. 초청그룹의 밴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내와 아들, 막내딸, 그리고 홀랑 씨가 자리를 잡자 나는 카메라를 들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사실 이곳에 홀랑 씨와 함께 온 것은 다문화축제가 있는 곳이면 무료 법률상담 하는 부스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 때문이었다. 최근 홀랑 씨는 이혼관련 소송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체육관 2층 밖에 몇 개의 부스가 있었는데 어린이 야구 배팅 체험, 페이스페인팅 등 우리가 찾는 부스는 없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점심시간이 다 되어갔다.

뒤늦게 창원팀이 있는 장소를 발견하고 자리를 옮겼다. 도시락 점심을 먹었다. 진행요원이 마산 어시장에서 협찬을 했다며 전어회를 준다. 홀랑 씨도 아내도 별로 회는 좋아하지 않아 모두 내차지다. ㅎㅎ, 여기서 전어회를 먹게 되다니.


점심시간이 지나면 바로 이어질 각 시군 에어로빅 경연에 참가할 팀들이 밖에서 한창 연습중이다. 평소 연습시간이 부족했던지 최종리허설임에도 스텝이 잘 맞지 않다. 실전에 강한 팀이려나?


귀엽다. 이제 돌 좀 지났을까. 혼자 일어서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공을 가지고 잘도 논다. 발로 툭 차기도 한다. "얘야, 그 공 우리 거다. 터질라 살살 차라."


비닐주머니에 풍선을 불어넣어 어느 팀이 견고하고도 높이 올리나 하는 시합니다. 당연 창원팀이 우승이다. 사람이 그만큼 많으니 당연하다. 내가 제일 바빴다. 사진 찍으랴 풍선 넣으랴. 멋짓 작품을 만들었는데 사회자가 이젠 터뜨리란다. 에구 아까워. 생각하고 있는데 벌써, '펑 펑 펑!' 에라 나도 폴짝 뛰어 드러누워버렸다. 역시 이럴 때 도움이 되는 나의 몸무게여.


지네발 게임이란다. 보통 초등학교 운동회나 예전의 '명랑운동회'에선 두사람이 짝을 이룬 '둘이 하나'게임이 이렇게 진화했다. 여섯 명이 한 조다. 그러니 더욱 보조를 맞추기 쉽지 않다. 우리쪽 팀은 고도의 두뇌를 가진 사람으로 구성됐나보다. 어깨를 걸고 아예 폴짝폴짝 뛰어 반환점을 돌았다. 그러니 스텝이 엉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단하슈. 반대쪽 팀 마지막 조가 범상치 않다. 차례가 오기 전부터 스텝을 맞추더니 차례가 되자 여지없이 실력을 발휘한다. 결국 역전을 이루었다.


아내에게도 이런 생활체육하는 곳에 나가라고 해야겠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내보다 훨씬 뚱뚱한 사람도 있던데 유연성이 장난 아니다. 아내도 놀란다. 경쾌한 음악에 사진을 찍도 자리로 돌아오는 나의 몸이 절로 흔들흔들.


이 꼬마도 한팀? 에어로빅 현장을 가장 생동감있게 관찰 혹은 감상한 유일한 인물이다. 공연을 마치고 인터뷰라도 하는 건데... 쩝.^^.


우리 창원팀 덕아웃이다. 에어로빅을 감상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그런데 승환이와 엄마는 이웃집 꼬마랑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한창 대화중.


노래자랑이 시작되고 여러 팀이 올라와 실력을 뽐냈다. 이 베트남 아줌마는 아이 둘을 데리고 올라왔다. 전통의상을 자랑하고 싶어서 이렇게 입고 나왔다고 했다. 누나는 다섯살이라는데 말도 잘한다. 전혀 다문화가정의 아이 같지 않다. 그에 비해 아들은 묵비권을 행사한다. 사회자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엄마가 무슨 말을 가르쳐 줘도 요지부동이다. 참, 이 사회자는 아내가 얼마 전에 폴리텍7대학에 갔을 때에도 사회를 본 사람이란다. 사회보는 실력이 대단하던데...


열창. 하지만 실수들. 그래서 더 재미있는. 10년이 되었어도 발음 문제는 한계가 있나보다.


딸에게 개인기를 시켰는데 엄마도 함께 개다리춤을 선보인다. 엄마가 더 즐겁다. 그래, 오늘 같은날 실컷 즐겨야지!


자기 팀이 무대에 오르자 손을 흔들며 응원 열기를 돋운다. 또 어떤 팀은 무대 앞에 나와서 춤을 추며 분위기를 살리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나왔다가 뻘쭘하게 서있기도 하다. '박수만이 모든 것을 커버한다?'


몽골출신 출연자다. 역시 발음이 다른 나라 출신보다 훨씬 낫다.


말하는 것을 보면 거의 한국사람이나 진배없다. 모두 중국출신이다. 맨 왼쪽 아줌마는 노래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이미자 노래를 좋아한단다. 목소리는 이미자와 달라도 노래 분위기를 제법 잘 소화했다. 당연히 박수도 많이 받았다. 옆에 오른쪽에 선 두 아줌마는 언니 동생이란다. 그런데 오늘 처음 만났단다. 서로 몇살인지도 모른단다. 그냥 언니라고 부른단다. 참내... 두 아줌마는 두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게 가능한가.


노래자랑이 끝나고 초대가수 무대가 이어졌다. 박현빈이 나온단다. 와~, 이런 곳에서 스타를 보게 되는구나. 노래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우 몰려 나온다. 사진을 찍고 난리다. 한 곡이 끝나자 가수가 "내가 누군지 아세요?"하고 묻는다. "박형빈이예요. 현이 아니고 형, 니은이 아니고 이응. 박형빈!" 아줌마들,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다음 노래가 이어져도 돌아가지 않고 계속 사진을 찍는다. 아내가 묻는다. 진짜 샤방샤방 부른 사람 맞나? 대답대신 카메라에 찍은 모습을 보여줬다. "에이! 아니네." 몇 곡이나 부르고 무대를 내려가면서 이미테이션가수 박형빈은 "그냥 내려가요?" 하면서 앵콜을 유도한다. 앵콜이 제대로 연호되지 않자 아예 무대로 돌아와서 "앵콜! 앵콜!"하고 선창을 한다. 한 곡을 더 하고 초대가수의 공연은 끝났다.

공연 중간중간에 추첨을 하기도 했지만 맨 마지막 경품 추첨 차례가 왔다. 누구나 기대감을 안고 기다리는 순서다. 스무명을 넘게 뽑았는데 우리는 아무도 안 됐다. 아내가 많이 아쉬워한다. 괜찮아. 즐겁게 놀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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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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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라드니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듸업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 유신(遺臣) 길재의 시조(時調)가 불현듯 생각이 난 것은 옛날 신문을 뒤적이고 있을 때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경남매일> 1994년 5월 12일 치 신문이다. 현재 김해에서 발간되고 있는 <경남매일>과는 다른 신문사다.

이날 신문에서 눈여겨 본 것은 다름아닌 극장의 영화광고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의 스타들이 각종 액션으로 면마다 연속 펼쳐 있어 눈이 갈 수밖에 없다. 그랬다. 당시 신문을 읽다보면 기사보다도 자연히 영화 광고에 눈길이 먼저 갔다. 어떤 영화들이 나왔나,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을 한 후에야 그날에 난 기사로 시선을 옮기는 이들이 많았다. 어쩌면 이런 습관은 자연스런 현상이었으리라.
      


  1994년 5월 12일자 경남매일 영화광고. /경남도민일보 DB   
 
아마도 이 당시가 마산·창원 지역 극장들이 가장 잘나가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영화광고가 무려 3개 면에 걸쳐 실려있다. 이날 10면에 실린 광고는 동보극장과 보림극장의 '두 여자 이야기', 태화극장의 '대통령의 딸', 강남극장의 '필라델피아', 그리고 시민극장의 스티븐 시걸 주연 '죽음의 땅'이다. 11면에는 중앙극장의 '에시스 벤츄라', 정우극장의 '하몽하몽', 동아극장의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이 게재되어 있다. 또 12면에는 피카디리극장의 '잡패군', 신태양극장의 '쉰들러리스트', 연흥극장의 '씨스터 액트2', 그리고 연흥아트홀의 'M버터플라이'가 실려있다.

신문을 넘길 때마다 이어지는 영화광고는 딱히 눈에 띄는 기사가 없는 날 독자들의 심기를 달래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잘 나가던 영화광고가 언제부터인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엔 연흥극장이 한몫했다. 마산문화원 이승기 영화자료관장의 말이다.

"1990년대 초 연흥극장이 연흥아트홀을 만들어 공연한다고 하다가 나중에 영화관으로 바꾸었지. 90년대 후반 들면서 연흥 사장이 부산의 몇 개 극장을 인수하고 영화배급사를 하면서 개봉영화를 독차지하게 된 거야. 이때문에 다른 극장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어. 하나 둘 문을 닫았는데 태화극장은 사장이 인맥으로 개봉영화를 걸 수 있어서 좀 오래갔지. 그런데 다른 극장들이 급속히 문을 닫게 된 것은 마산시네마처럼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겨난 때문이야."

<경남도민일보> 1999년 6월 14일 치 신문 12면에 나타난 영화광고는 연흥 4개관과 동아·태화·정우극장이 하나로 묶여서 실려있다. 전 지면에 걸쳐 영화광고는 단 한 면뿐이다.

이러다 다음날인 15일부터는 연흥과 나머지 극장이 따로 실린다. 연흥 외엔 광고도 아주 작게 실렸다. 그나마 태화극장이 명맥을 유지하다가 2002년 9월 30일 마지막으로 영화광고를 내고 자취를 감춘다.

이후 연흥극장 혼자 신문에 영화광고를 내는 시대가 2년간 이어진다. 2004년 10월 1일, 연흥은 '귀신이 산다', '슈퍼스타 감사용', '80일간의 세계일주', '연인', 이렇게 4개의 영화를 광고한 후 영화관을 1관과 2관으로 축소하면서 영화광고를 아예 하지 않게 된다. 한동안 신문에 영화광고가 사라졌다.

신문에 영화광고가 다시 살아난 것은 같은 해 12월 15일의 일이다. <경남도민일보> 13면에 '메가라인 마산'이 5개의 영화 광고를 실었다. '역도산', '오페라의 유령', '브리짓 존스의 일기', '인크레더블', '블레이드3'이다. 하지만 2005년 6월 17일에 실은 '연애의 목적',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안녕, 형아',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간큰 가족'이 <경남도민일보> 지상에 나타난 마지막 영화광고다.

1990년대 중반 마산창원지역에 스무개가 넘는 재래식 극장들이 신문에 광고를 무수히 쏟아내면서 '영화'를 구가하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되면서 신문광고가 사라졌으니 신문으로 봐선 그 시절이 '어즈버 태평연월'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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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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